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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한 김정은인가 독재자 김정은인가


입력 2018.04.30 06:55 수정 2018.04.30 07:17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국민은 안심해도 문 대통령 자신은 경계 게을리 하지말아야

함께 평화 추구 이성 가진 집단이라면 주민폭압체제 고집했겠는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송행사 후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떠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한국공동사진기자단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송행사 후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떠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한국공동사진기자단

청와대, 발군의 이벤트 정치

[1] “미국이 북에 대해 체질적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우리와 대화해보면, 내가 남쪽이나 태평양상으로 핵을 쏘거나 미국을 겨냥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 조선전쟁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 한민족의 한강토에서 다시는 피 흘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결코 무력사용은 없을 것임을 확언한다.”

김정은이 정상회담에서 그렇게 밝혔다고 한다. 청와대가 29일 추가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과연 이벤트의 청와대’라는 느낌을 준다. 국민의 눈길과 관심을, 그리고 긍정적 반응을 계속 이끌겠다는, 말하자면 전략적 홍보의 한 단면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판문점 선언’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줄이거나 없애고 싶다는 의도도 읽힌다. 하긴 그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의 절절한 심정을 못 믿으면 아주 미안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이 자신의 책상위에 핵단추가 있다고 미국을 위협하던 그 김정은이 맞는가 의심될 정도의 솔직한 토로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는 북한 체제가 명실상부한 김정은 1인 지배체제임을 확인시켜주는 표현 방식이기도 하다. 북한을 움직이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임을 은연중에 과시한 것이다. “조선민주주인민공화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라고 하지 않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같은 북한 체제의 구조와 김정은의 인식 때문에 4‧27판문점 정상회담 합의문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될지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김정은이 새로 태어났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은 판문점의 김정은에게서 그의 진면목을 봤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착각이고 착시일 가능성이 아주 아주 높다. 앞으로도 그와 북한 체제가 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안이 없는, 극도로 경직된 체제이기 때문이다.

풍계리 폐쇄, 현란한 쇼일 수도

[2]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화려한 교섭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국내외적으로 찬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덩달아 박수를 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는 빛을 보이면 민족의 죄인으로 치부될 분위기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같은 이는 정상회담에 대해 ‘위장 평화쇼’라고 했다가 정치권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역사의 훼방꾼’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어느새 역사의 평가가 끝난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겠다. 그 정도로 정치권도 여론도 들떠 있다. 워낙 곡절이 많았던 일이다. 김정은은 끝까지 핵무장을 고집하고, 미국은 여차하면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러다 정말 전쟁이 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극도로 부풀어 올랐을 때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판문점에서 만나 해결사의 기량을 유감없이 뽐냈다. 판문점에서 중계된 장면 장면들이 대단히 인상적이었고 공동 합의문 발표는 감동적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972년 7월 4일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을 때도 국민들은 환호하면서 당장 통일이 이뤄질 듯이 흥분했었다. 그 후 기본조약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고,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광범위한 찬사와 지지를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판문점 드라마’에는 ‘상황의 극적인 반전’ 효과가 더해졌고 그래서 호응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아직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전인데, 청와대가 성과를 과시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것은 엄청나면서도 내밀한 합의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정은의 신뢰성이 담보된 ‘대결단’을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했을 가능성이 있을까? 이를테면 미‧중과의 등거리 외교정책 같은….

그거야 아주 반길 만한 일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김정은이 당장 핵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핵무기 폐기가 불가피한 상황에 몰릴 경우에도 그것은 최후적 조치가 될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또 한 번의 현란한 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핵실험이 가능할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므로.

체제의 속성 바뀌지 않았는데

[3] 뭔가 믿는 바가 있으니까 청와대는 마음껏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 터이다. 그게 아니라면? 남북한이 한마음으로 압박을 가하면 정치적 입지가 불안정한 트럼프로서는 타협안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계산하는 것일까? 그건 필부(匹夫)의 추측 밖 일이다. 그저 믿고 바라기로는 무작정 밀어 붙이는 게 아니기를!

솔직히 말하자면 김정은의 시원시원하고 진실하다고 여겨지는 화술과 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뢰보다는 의심에 더 무게를 두게 된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김정은이 오직 민족적 친애의 정(情)만을 가지고 회담에 임했겠는가. 빙산의 보이는 부분은 10%에 불과하다고 하거니와 북한체제 뇌수(腦髓)의 책략 또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는 체제의 존립과 집권기반의 강화를 위해 우리와 미국에 화해의 손짓을 보냈을 것이다. 체제 와해의 위기감까지 가질 정도의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저처럼 쉽게 다가왔을 리 없다. 그렇다면 회담에서 보여준 그의 태도와 언설은 북한의 최고 책략가들이 작성하고, 그가 재가한 시나리오였을 개연성이 높다.

그가 정말로 평화를 희구하고, 민족에 대한 사랑을 가졌다면 무엇보다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부터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수령 1인의 전체주의적 통치가 아니라 법치를 실현하고, 무엇보다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하는 모습부터 보이는 게 순서라는 뜻이다. 또 자신의 권력과 권위보다는 주민들의 민생을 더 중히 여겨, 개혁 개방정책을 주저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줘야 옳다.

안으로는 요지부동의 1인 지배체제를 고수하면서 밖으로 웃는 얼굴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어떤 희망의 말을 하든 개인 김정은을 믿어서는 낭패하기 쉽다. 그 체제의 속성을 봐야 한다. 거기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말의 신뢰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독재자의 두 얼굴 잊지 말아야

[4]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긴 휴전 후 65년 동안 국지적 충돌은 몰라도 전면전이라 할 만한 사변은 없었다. 전망 가능한 장래에도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건재하고 미국이 우리를 뒷받침해주는 한 우리의 안보는 확실히 지켜진다. 대통령이 아니라 일개 필부로서도 그 점은 장담할 수 있다.

물론 말의 차원이 다르다. 김정은과 대화를 하고, 정보를 분석한 다음 참모들의 의견까지 듣고서 한 ‘대통령의 말’은 비할 바 없는 무게를 갖는다. 게다가 김정은도 절대로 무력사용을 않겠다고 했다. 따라서 국민이 종전보다는 좀 더 안심할 수 있게 된 셈이지만 문 대통령 자신은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분단 이후 73년, 6‧25전쟁 후 지금까지 서로 증오와 적개심을 키우며 총부리를 마주 겨눠 온 사이이다. 국가 통치체제는 붕괴되지 않는 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절대권력자의 심리나 행태 또한 다를 바 없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앞으로 4년이다. 임기 후의 상황 변화에 대해서까지 책임지기는 어렵다. 반면에 김정은에겐 임기가 없다. 그간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김정은과 북한체제의 신뢰성은 바닥이다. 문 대통령이 임기 후의 상황까지 보장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김정은 개인의 진심을 믿어준다고 하자. 그렇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와 평화적으로 공존하려면 기존 체제의 변화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습왕조의 유사 신정체제, 수령유일사상, 수령뇌수론 따위로는 세계의 자유인들과 교류‧협력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할 경우 체제는 와해의 위기에 직면하고 만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믿든 안 믿든, 거기에 말을 보탤 생각은 없다. 다만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의 생존을 책임져야 할 국정 최고책임자에게 요구되는 책무와 사명을 유념해달라는 주문은 꼭 해야 하겠다. 전쟁의 위험성을 대화로 극복하고 함께 평화를 추구하겠다고 할 정도의 이성을 가진 집단이라면 세습왕조체제, 주민폭압체제를 고집해왔겠는가. 문 대통령이 주목해야 할 사람은 자신과 만나 소탈하게 웃던 개인 김정은이 아니라 북한 주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철권통치자 김정은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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