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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남북정상회담][기자의 눈] 인공기는 있는데…


입력 2018.09.19 03:00 수정 2018.09.19 06:19        정도원 기자

인공기는 있는데 태극기는 없고 한반도기라니

정부가 모른척 하는 사이 국민 정체성에 혼란

인공기는 있는데 태극기는 없고 한반도기라니
정부가 모른척 하는 사이 국민 정체성에 혼란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직후, 인공기와 한반도기를 흔들며 맞이하는 북한 주민에게로 다가가 악수를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직후, 인공기와 한반도기를 흔들며 맞이하는 북한 주민에게로 다가가 악수를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18일부터 시작된 3차 남북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 일행이 평양 순안공항에 내리는 순간이 관심의 정점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과연 직접 영접을 나올는지 어떤지를 TV 생중계 화면을 통해 살피던 국민들 중에서는 의아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공항에 마중나온 인파들의 손에 인공기와 한반도기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관례적으로 정상회담에서는 당사국의 깃발을 함께 사용한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열렸던 미북정상회담 배경에도 성조기와 인공기를 교차 장식했다.

이러한 관례대로 깃발이 사용된 것이라면 인공기에 대응하는 우리, 문재인 대통령의 깃발은 태극기일 수밖에 없다. 국적 불명의 한반도기가 아닐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상대국 공항에 착륙할 때 관례적으로 방문국과 우리 국기를 게양하던 전용기 전면 윗부분에 아무 깃발도 내걸지 않았다.

북한 당국이 태극기 내거는 것을 문제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삼았다면 전용기에 태극기 외부 도장이 돼 있으니 그것부터 문제삼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의도적으로 태극기를 내걸지 않았다는 뜻인데, 이러한 자체검열이 왜 작용하는지 발상이 작용하는 프로세스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일각에서는 민족 내부의 행사라서 태극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인공기는 왜 나왔을까.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 마련된 미북정상회담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로에게 다가서고 있다. 회담장의 배경에는 국제관례대로 당사국의 깃발인 미국의 성조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교차 사용됐다. ⓒ데일리안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 마련된 미북정상회담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로에게 다가서고 있다. 회담장의 배경에는 국제관례대로 당사국의 깃발인 미국의 성조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교차 사용됐다. ⓒ데일리안

북측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때나,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 때에는 인공기를 쓰지 않고 붉은 계열의 꽃술을 휘날리면서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도 그랬다면 어리둥절하거나 의아해하는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태극기는 배제된 가운데, 전격적으로 인공기가 한반도기와 함께 사용됐다.

남북관계도 국제관계만큼이나 특수한 관계이기 때문에, 관례가 중요하다. 한 번 선례(先例)가 만들어졌으니, 앞으로 우리 대통령이 방북할 때마다 북한이 인공기와 한반도기만 흔든다고 해서 뭐라 하기도 어렵게 됐다. '살라미 전술'에 한 발 한 발 물러서다보면, 나중에는 한반도기도 사라지고 인공기만 남지 말란 법도 없다.

태극기 없이 인공기와 한반도기만 휘날리는 모습을 신경쓰는 국민이 극소수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한 보도전문채널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트랩을 내려오는 장면을 중계하면서 "환영 나온 인파들, 만세를 부르고 인공기와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는 멘트를 했다. 댓글창에는 "인공기와 태극기를 흔들었다고? 태극기는 눈씻고 봐도 없다"며 분개하는 댓글이 달렸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17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모든 부분이 우리로서는 블랭크(공백)"라고 했다.

북한이 무슨 깃발을 내걸고 흔들지조차 '블랭크'였을까. 몰랐다고 해도 문제이며, 알고도 모른 척 했다면 더욱 문제다.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들의 정체성 혼란을 초래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다 자란 성인들도 어리둥절하거나 의아해하는 판국이다. 평양 순안공항 생중계 화면을 지켜보며 "'북남이 통일되면 태극기를 사용하게 되느냐, 인공기를 사용하게 되느냐'고 천진난만하게 방송 인터뷰를 하던 초등학생이 생각난다"는 의원실 관계자의 씁쓸한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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