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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회’ 결성에 엉뚱한 배경은 없을까?


입력 2018.11.05 08:13 수정 2018.11.05 08:16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특별 수행원들의 평양 봉변

숨길 수 없는 김정은의 본색…기업에 북 지원 압박 말아야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특별 수행원들의 평양 봉변
숨길 수 없는 김정은의 본색…기업에 북 지원 압박 말아야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이틀째인 지난 9월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 등이 오찬을 갖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이틀째인 지난 9월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 등이 오찬을 갖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방북 특별수행원 뒤풀이 모임’이라는 게 지난달 2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렸던 모양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주도한 이날 모임의 주 대상자는 52명이었다.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 평양에 갔던 특별수행원들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계각층 인사들로 구성된 이 특별수행단에는 경제계 인사가 17명이나 포함됐다.

북한에 대한 유엔안보리 및 미국의 대북제재가 여전한 때다. 문 대통령이 왜 굳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제인들을 수행시켰을까? 대통령 행차의 위의를 더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대통령 혼자 간다고 해서 덜해질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정은에게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였을까? 각계의 명망가들을 대거 거느리고 가서 그에게 인사시키면 자신의 진정을 더 잘 알아줄 것 같다고 여겼을 법은 하다.

특별 수행원들의 평양 봉변

그러나 그런 생각 만이었다면 대표적 재벌 총수 여럿을 모아서 데리고 가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김정은에게 자신의 적극적인 대북 지원의지를 확인시켜주려는 뜻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앞으로 대규모의 대북 투자와 지원을 결정해 줄 사람들을 직접 소개시키고자 했던 게 아닐까? 동시에 재벌 총수들에게도 일종의 의무감을 안겨주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만약 그런 생각이었다면 경제계 인사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식이지만 우리 대기업들의 내수시장 의존도는 아주 낮다. 대부분의 매출과 이익, 심지어 생산까지도 해외 시장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 부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해당 기업은 존립의 위기로 내몰리게 된다.

아마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가 봐야 북측의 기대에 부응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약속도 할 처지가 못 된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면야 장래를 기약할 수라도 있다. 그게 아닌 상황이라면 가시방석에 앉혀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곳에 왜 가고 싶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리선권이라는 오만방자한 북한 인사는 맨입으로 와서 밥만 축내느냐는 듯이 재벌 총수들을 힐난했다. “아니,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갑네까?” 재계 대표들은 졸지에 눈물 밥 먹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봉변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별로 놀란 기색이 없다. 통일부 장관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했다가 “전해 전해 들은 것”이라는 식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냥 덮고 넘어가고 싶다는 뜻이겠다. 어이없이 당한 사람들은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까?

이런 사람들을 뒤풀이 하자며 초대할 양이었으면 먼저 ‘평양봉변’에 대해 유감이라도 표할 일이었다. 그런 배려는 낌새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불렀다면야 어쩔 수 없이 참석했겠지만 그게 아니었는데 선뜻 응할 사람이 있었겠는가. 주요 재벌 총수들이 다 이런 저런 이유로 불참했던 모양이다. 참석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터였다.

숨길 수 없는 김정은의 본색

뒤풀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고려회’라는 모임 이름까지 지었다는 보도에 실소하게 된다. 대한도 조선도 아니고, 서울도 평양도 아닌, 고려라고 한 데서 의도성을 느낀다면 시쳇말로 ‘오버’일까? 문 대통령 평양 방문 때 이른바 한반도기와 인공기만 춤추던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그나마 ‘평양회’가 아니니 다행인 셈인가?

친목회 이름 짓는 일에까지 북측 눈치를 살피지는 않으리라고 믿고 싶다. 어쨌든 문 특보를 비롯한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참모분들, 이제쯤은 북측에 대한 기대를 접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지금 북한을 지원하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당하기 십상인데도 ‘랭면’ 폭언을 쏟아내며 대북지원을 압박했다는 저들 아닌가.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한심해서 하는 말이다.

리선권이 원래 ‘센 농담’을 좋아한다고 거드는 사람도 있다고 들린다. 너무 나가면 코미디가 되고 만다. 언제 그의 안하무인격 ‘센 농담’을 허물없이 넘길 만큼 서로 간에 친교가 깊어졌다는 것인지, 그 설명을 먼저 해주면 좋겠다. 경쟁적인 북한 비위맞추기는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은 왜 생각하지 않는지 답답하다.

괜히 하는 걱정이 아니다. 최근 주요 건설현장을 현지지도 하고 있다는 김정은은 지난 1일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에 가서 본색을 또 드러냈다. 그는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의 복리증진과 발전을 가로막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굴복시켜보려고 악랄한 제재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하고 있다”며 “모든 것이 어렵고 긴장한 오늘과 같은 시기에 연속적인 성과를 확대해나가는 것은 적대세력들에게 들씌우는 명중포화이며 당의 권위를 옹위하기 위한 결사전”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비핵화 쇼에 제재해제로 답하라는 공갈성 요구다.

김정은이 ‘김씨 왕조’체제를 포기하지 않거나 포기하지 못하는 한 그의 행로는 바뀔 수가 없다. 그가 미국에 대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다음날 북한 중앙통신은 개인 명의 논평 형식을 빌려 ‘핵‧경제 병진노선 회귀’ 가능성을 들먹였다. “만약 미국이 우리의 거듭되는 요구를 제대로 가려듣지 못하고 그 어떤 태도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지난 4월 우리 국가가 채택한 경제건설총집중로선에 다른 한 가지가 더 추가되어 ‘병진’이라는 말이 다시 태여날 수도 있으며 이러한 로선의 변화가 심중하게 재 고려될 수도 있다”고 이 논평은 공공연히 협박했다.

이런 북한에 대해 문 대통령과 그의 대북정책 참모들은 한없는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친애의 정을 쏟아붓고 있다. 김정은이 애초부터 핵무장 포기에는 전혀 마음이 없었음을 설마 몰랐을까. 김정은이 개과천선한다면 그게 곧 상전벽해다. 북한 체제의 특수성, 기형성을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만이 깨닫지 못했겠는가.

그런데도 정부의 대북 정책은 ‘평화’ 외길이다. 내가 웃으면 상대가 따라 웃을 것이고, 내가 우의를 보이면 상대는 적개심을 버릴 것이며, 내가 무장을 해제하면 상대도 대포를 녹여 보습을 만드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어서일까? 평화의 정신은 좋은데 5000만 국민의 운명이 담보돼야 한다는 점은 간과되는 듯해서 흠칫하게 된다.

기업에 북 지원 압박 말아야

아무려면 그 정도로 맹목적인 평화지상주의자들이겠는가. 그게 아니면? 무엇이,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한‧미동맹체제가 이완될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김정은 돕기에 집착하는 인상을 주게 만드는 것일까? 김정은 체제 강화를 지원하는 게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는 게 정치적‧이념적 신조 때문이라고는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다.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든 한국 정부 뜻대로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처지를 고려해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이변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부를 앞세워 국제사회의 대북 경계심을 완화시키고 이를 기회로 경제제재란 올가미를 벗겠다는 기만적 전략전술에만 골몰할 게 뻔하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정부도 단시간에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를 접은 분위기다. 북한이 핵 및 미사일 실험만 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개의치 않겠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천명했다. 급히 서둘러봐야 특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면 경제적 제재로 북한이 질식할 때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고 말하려는 듯하다.

김정은은 다시 비핵화 조치의 일환으로 보이는 쇼를 하면서 미국의 양보를 압박하거나, 아니면 핵 및 미사일 실험 재개로 현재의 교착상황을 타개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그를 구해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은 확실한 비핵화 조치가 확인되지 않는 한 제재를 풀지 않을 것이다. 핵 및 미사일 실험재개에는 군사적 대응이 기다릴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동의 없는 전쟁은 안 된다”고 했지만 주한미군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면 한국이 미국의 군사행동을 저지할 명분도 방법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오직 ‘평화 희구’라는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현재의 한반도 안보 구도는 그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어떤 합의를 하든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각오하지 않는 한 경제‧사회적 대북지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족할 만한 지원이 없다면 김정은은 금방 인내의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 집착하는 모습이고 그의 참모들은 한술 더 떠 특별수행원들을 ‘고려회’라는 동아리로 엮으려 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지원체제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읽히게 마련인 시도다. 물론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경제계는 그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정권 안팎 유력자들의 힘이 아무리 커도 이들로 하여금 북한에 거액을 비밀리에 송금하고, 거액의 달러가 흘러들어가게 하는 협력사업을 추진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건 미국의 대북제재가 없을 때나 가능했던 일이다.

대통령을 수행해서 평양에 갔다 온 것이 뭐 그리 대단하게 기념할 만한 일이라고 이름까지 가진 친목모임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유별나게 문 대통령의 수행원들만이 그런 모임을 갖는다는 것도 의아하다. 김정은은 꿈쩍도 않는데 우리 측에서만 비위 맞추기에 체통도 잊은 듯 하는 게 어이없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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