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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문재인 케어, 3류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19.04.25 06:00 수정 2019.04.25 11:27        이은정 기자

관련 사업에만 재정 펑펑…건보 8년만에 적자로 전환

급속한 고령화에도 낙관적 전망만

관련 사업에만 재정 펑펑…건보 8년만에 적자로 전환
급속한 고령화에도 낙관적 전망만


ⓒ데일리안 ⓒ데일리안

“이대로 가면 우리는 결국 3류 경제로 전락해 ‘바나나 공화국’이 될 것입니다.”

1986년 당시 호주 재무장관이었던 폴 키팅이 경제 회생을 위해선 개혁이 필요하다며 국민들을 설득할때 했던 말이다. 바나나 공화국은 오 헨리가 단편소설 ‘양배추와 왕’에서 자연자원에만 의존하거나 독재로 부패된 국가를 지칭한 말이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쉽게 썩는 바나나의 속성에 비유한 것이다.

키팅은 석탄과 철광석 등 1차 산업에만 매달리는 호주 경제의 구조적 위험을 비판했다. 그는 재무장관을 거쳐 총리를 지내며 10여년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해 변동환율제 도입과 수입 쿼터제 폐지, 금융산업 규제완화, 국영기업 민영화 등을 이뤘다. 30년이 지난 지금 호주는 바나나 공화국의 위기를 모면하고 부러움을 사는 선진국으로 탈바꿈했다.

호주가 더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은 연금과 건강보험이다. 1990년대 초 키팅 총리가 대대적인 연금 및 의료보험 개혁을 단행한 결과다. 소외계층은 정부가 책임을 지지만 나머지는 필수 서비스만 정부가 부담하고 개인별 민간보험으로 이전시켜 재정건전성을 지켰다.

연금 역시 노사가 공동으로 민간연금에도 강제로 불입하도록 해 세제혜택을 기반으로 공적 부담을 시장과 공유하는 개혁을 일찌감치 정착시켰다. 그 결과 호주는 GDP에 대한 공적연금의 부담 비율이 4% 수준으로 선진국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의료보험 개혁은 우리나라도 발등의 불이다.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려면 탄탄한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한 '문재인 케어'는 세금 낼 사람은 사라지는데 지금 세대만 많이 받겠다는 것이어서 우려가 크다.

정부 안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건강보험공단 부담 급여 비율)이 현재 62%에서 오는 2023년까지 70%로 높아진다. 이를 위해 정부는 향후 5년간 41조6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이 중 10조원은 누적 적립금으로 사용하고 20조원은 물가 및 임금 상승률을 반영한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언젠가는 무분별한 혜택을 남용한 청구서가 국민 앞으로 배달되게 마련이다. 실제로 지난 2월 국회예산정책처는 지금처럼 문재인 케어를 진행하면 지난해 기준 20조6000억원 쌓여 있는 건보 적립금이 2026년에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재정적으로 문제없다"며 요지부동이다. 당장 올해는 건보 재정에 3조1636억원의 적자가 나지만, 적자 폭이 매년 줄어들어 2023년에도 적립금을 11조원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건보료만 조금씩 올리면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기금이 동나진 않을 거라고도 했다. 현 정부 임기 중인 2022년까지는 매년 3.49%씩, 차기 정권인 2023년에는 3.2% 올리면 된다고 구체적인 숫자도 내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의료비 증가율이 연평균 8% 오를 거라고 봤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더 늘어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고령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는데 지금 이렇게 혜택을 늘려도 되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65세 이상 노인들은 그 이하 연령대 국민보다 진료비를 평균 3배 이상 쓰는데,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이 앞으로 5년간 176만명 늘어날 전망이다.

문재인 케어의 재원은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우선은 20조원 가까이 쌓여있는 건보재정 여유분과 재정지출 절약분, 그리고 7조원에 이르는 국고지원의 확대 등으로 성과를 낸다지만 국민이 체감할 만한 재정의 확보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당장 건보료 상한과 국고지원 확대에 대한 명확한 설계와 법적·제도화가 필요해 보인다. 달콤한 말로 포장해서 더 큰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떠넘기기에 급급하니 3류 바나나 공화국의 비극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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