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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명예회장, LG그룹 기틀 마련한 장본인


입력 2019.12.14 12:18 수정 2019.12.14 19:49        이홍석 기자

25년간 그룹 이끌며 전자·화학 등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

국내외 연구소 70여개 설립...R&D 경쟁력 강화 전력

소탈한 삶 속에서도 교육과 사회공헌 활동에도 힘써

25년간 그룹 이끌며 전자·화학 등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
국내외 연구소 70여개 설립...R&D 경쟁력 강화 전력
소탈한 삶 속에서도 교육과 사회공헌 활동에도 힘써


구자경 LG 명예회장(앞쪽 가운데)이 럭키(현 LG화학) 청주공장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생산제품을 살펴보고 있다.ⓒLG 구자경 LG 명예회장(앞쪽 가운데)이 럭키(현 LG화학) 청주공장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생산제품을 살펴보고 있다.ⓒLG
14일 별세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25년간 그룹의 2대 회장을 맡으며 현재 LG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으로 꼽힌다.

LG전자와 LG화학 등을 주력 계열사로 키워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시켰고 국내외 연구소를 70여개나 설립하며 연구개발(R&D) 경쟁력을 향상시켜 그룹의 성장 기틀을 마련했다.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명예회장의 6남4녀 중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1945년 진주사범학교 졸업 후 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다 1950년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이후 20여 년간 현장에서 경영수업을 쌓다가 1969년 부친의 타계로 1970년 1월 2대 회장 자리에 오른다. 이후 1995년 2월까지 그룹의 수장으로 기술과 인재를 중시하는 경영방침으로 LG를 글로벌 기업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국내 기업들이 엄두를 내지 못했던 해외 생산 시설과 법인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지난 1982년 미국 앨라바마주 헌츠빌에 컬러TV공장을 설립하면서 당시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등 25년간 재임기간 동안 약 50여개의 해외법인을 설립하며 국내 기업이었던 LG의 글로벌화에 힘썼다.

또 해외 기업들과의 합작 경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선진기술 확보에도 힘썼다. 지난 1974년 금성통신과 지멘스와의 합작을 비롯, 일본 히타치·후지전기·알프스전기, 미국 AT&T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 경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면서도 파트너사와의 잡음이 없어 국제 합작의 모범 사례를 일궈냈다.

구 명예회장은 글로벌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연구개발(R&D)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끌어 올리는데에도 주력했다. 재임기간 국내외에 70여개의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R&D를 통한 신기술 확보에 주력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지난 1999년 10월 LG화학 여수공장을 방문해 시설현황을 살피고 있다.ⓒLG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지난 1999년 10월 LG화학 여수공장을 방문해 시설현황을 살피고 있다.ⓒLG
당장의 성과보다 중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고 추진한 이같은 노력은 후대인 구본무 회장 시대에 LG그룹이 크게 성장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지난 1973년 '인재육성'과 '과학기술 진흥'을 기치로 학교법인 LG 연암학원을 설립한 데 이어 1984년 우수 기술인력 양성을 목표로 경남 진주에 연암공업대학을 세우는 등 후학 양성에 힘쓴 것도 이같은 그의 신념의 결과물이다.

또 1987년에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 국내 민간기업 과학관 1호인 LG사이언스홀을 마련했하는 등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과학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기업 경영에서도 혁신을 실천한 인물이다. 기업 경영에 있어 사업전략, 조직, 기업문화 등 전반에 있어서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기업체질을 갖춰야 한다며 경영혁신 활동도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지난 1988년 21세기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도약을 목표로 한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이라는 변혁을 발표하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의 권한을 부여해 이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하는 '자율경영체제'를 확립했다.

또 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을 국내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기업공개를 하며 투명경영에 있어서도 한 발 앞서 나갔고 철저한 고객 중심 경영을 표방해 고객 제일주의 정신을 그룹 전반에 심었다.

그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70세인 1995년 2월 그룹 총수 자리를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승계하며 경영일선에 물러난 뒤에도 교육활동과 공익재단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은 지속했다.

은퇴 후 충남 천안 아산에 있는 한 농장에서 소탈하게 여생을 보내면서도 지난 2015년까지 LG복지재단 이사장직은 유지하며 사회공헌활동을 지속하며 기업과 사회의 상생을 몸소 실천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2014년 5월 7일 천안연암대학 개교 40주년 기념비 제막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문화 연암공업대학 총장, 구 명예회장, 이문호 천안연암대학 총장, 정윤석 LG연암학원 전무.(당시 직책)ⓒLG 구자경 LG 명예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2014년 5월 7일 천안연암대학 개교 40주년 기념비 제막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문화 연암공업대학 총장, 구 명예회장, 이문호 천안연암대학 총장, 정윤석 LG연암학원 전무.(당시 직책)ⓒLG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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