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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부, '철밥통' 은행원 호봉제 폐지 나선다


입력 2020.02.03 06:00 수정 2020.02.03 15:30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경사노위, 직무급제 골자로 한 금융권 임금 체계 개편 가닥

연공서열 대신 업무 따라 급여 차등…노동계 반발에도 강행

정부가 금융권 근로자들의 호봉제 폐지를 본격 추진한다. 특히 다른 업종에 비해 호봉제 체계가 공고한 은행들이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뉴시스 정부가 금융권 근로자들의 호봉제 폐지를 본격 추진한다. 특히 다른 업종에 비해 호봉제 체계가 공고한 은행들이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뉴시스

정부가 금융권 근로자들의 호봉제 폐지를 본격 추진한다. 특히 다른 업종에 비해 호봉제 체계가 공고한 은행들이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햇수만 채우면 연봉이 올라 철밥통이라는 비난을 받아 온 은행원들의 임금 구조가 전환점을 맞게 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벌써부터 노동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금융산업위원회는 직무급제를 골자로 하는 임금 체계 개편안을 금융권에 권고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직무급제는 그 이름처럼 직무의 난이도나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다르게 책정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직급이 낮더라도 능력을 인정받아 강도와 난이도가 높은 업무를 맡으면 근속 연수나 직급과 무관하게 더 높은 연봉을 주는 방식이다. 근속 기간에 따라 직위가 상승하고 매년 일정 비율로 연봉 인상이 이뤄지는 호봉제와 상반되는 급여 시스템이다.


이 같은 금융권의 임금 시스템 손질 방안에 경사노위 금융산업위 위원들 중 공익위원과 경영계 대표들은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공익위원들이 통상 정부 입장을 대변해 왔다는 점에서 사실상 청와대도 금융권 호봉제 폐지에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경사노위 금융산업위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계는 이에 대해 강력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공익위원과 경영계 위원들은 금융권 임금 체계 개편을 강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막판까지 의견 조율을 통해 동의가 이뤄지면 공동 합의문을 내겠지만, 끝내 노조 측을 설득하는데 실패하더라도 권고안을 도출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경사노위 관계자는 "관련 논의가 이뤄진 것은 맞지만 임금 체계 등 개편안을 발표하기로 결정된 바 없다"며 "공익위원과 경영계, 노동계 3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권고 및 합의안을 내지 않을 것이고 그런 전례도 없다"고 말했다.


이번 경사노위 금융산업위의 방침은 앞서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임금 구조 개편안을 본격적으로 민간에 확대 적용하려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직무 능력 중심의 임금 체계 확산 지원 방향'을 발표하고 공공기관부터 이를 시행하겠다고 예고해둔 상태다.


정부는 호봉제에 기반을 둔 근로자 급여 체계가 직무와 능력 위주의 공정한 임금 구조를 해치고, 더 나아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요소로 판단하고 있다. 경영계도 기본 연봉을 직무급으로 전환하고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임금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이어 왔다.


경사노위 금융산업위의 이번 급여 구조 개선안으로 가장 압박을 받게 될 분야는 금융권 가운데서도 은행이 될 전망이다. 증권사들은 업종 특성 상 이미 성과급 시스템이 충분히 뿌리를 내렸고 보험사들도 선제적으로 직무급제를 시행하기 시작한 반면, 은행들은 여전히 대부분 호봉제를 고수하고 있어서다.


아울러 은행들이 금융권에서 근로자가 가장 많은 근로자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방안의 핵심이 되는 배경이다. 그 만큼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어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은행들의 임직원 수는 총 11만9486명으로, 증권사(3만5904명)와 손해보험사(3만4344명), 생명보험사(2만5421명) 등에 비해 훨씬 많다.


문제는 역시 노조의 반발이다. 지금까지 유지돼 온 급여 체계를 정부가 나서 깨겠다는 선언인 데다 직무급제 반대가 금융노조의 기본 방침인 만큼, 노조로서는 저항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노조는 직무급제가 궁극적으로 근로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직무별 임금 산정 기준을 명확하게 나누기 어려워, 결과적으로 사측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근로자를 몰아내는 도구가 될 것이란 얘기다.


최근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에서 노조가 합의 조건으로 직무급제를 언급한 대목은 금융권 노동계의 이런 반발 심리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윤 행장에 대한 출근 저지 투쟁을 접으면서 사측과 맺은 합의문에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 시 노조가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직무급제를 중심으로 한 임금 구조 개편은 금융권 노조가 오래도록 절대 불가를 외쳐오던 사안인 만큼, 정부가 이를 밀어붙일 경우 노동계와의 극심한 대립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일자리 문제가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 여론이 어느 쪽 의견에 더 공감하는지가 결국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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