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마데우스', 젠더프리로 호평
드라마 '모범택시' 출연...4월 첫 방송
“한순간도 열심히 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압도적인 가창력은 물론, 무대 장악력, 섬세한 연기력이 돋보이는 배우 차지연이다. 어떤 캐릭터를 맡겨놔도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그의 능력은, 결코 ‘운이 좋았다’고만 볼 수 없다. 관객들마다 ‘인생캐’ ‘대표작’을 다르게 꼽는 것도 차지연이 매작품마다 그 캐릭터를 완벽하게 흡수해내기 때문이다.
지난달 종연한 연극 ‘아마데우스’는 남성 음악가 살리에리의 이야기다.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퍼의 극본을 원작으로, 2018년 국내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타고난 재능을 지닌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에 질투를 느끼며 자신의 평범함에 고통스러워했던 살리에리의 고뇌를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이 살리에리는 차지연을 통해 그려졌다. 당연히 남성 캐릭터를, 여성 배우인 차지연이 연기하는, ‘젠더 프리’에 시선이 집중됐다.
“도전을 좋아하고 용기를 내서 젠더 프리를 하고 있지만 저 역시 걱정되는 부분을 알고 있어요. 모든 작품의 젠더 프리를 다 하고자 하는 건 아니에요. 선을 지키려고 하고, 매번 신중해요. ‘아마데우스’에서도 살리에리가 실존 인물이고 남자인데 여배우인 제가 그 역할로 무대에 섰을 때 혹시나 거부감이 들거나, 거리감을 느낄까봐 걱정했어요. 작품 전체에 방해가 되고 피해가 되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더 연습에 매진했고 어떻게든 공감이 되고, 관객을 설득이 되는 캐릭터를 만들고자 노력했어요”
‘아마데우스’처럼 남녀 성별을 반전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 문화는 차지연이 판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데우스’ 이지나 연출의 또 다른 작품이었던 ‘더 데빌’과 ‘광화문 연가’에서도 젠더프리의 주인공이었다. 또 지난해 2월 이 연출이 선보인 뮤지컬 콘서트 ‘스테이지 콘서트 Vol.2-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도 차지연은 남성 캐릭터 유다를 맡아 호연했다. 그는 이 호평의 공을 이지나 연출에게 돌렸다.
“(이지나 연출이) 어떤 작품이든지 믿고 맡겨 주시거든요. 장르 불문은 물론, 시대적인 배경이나 여성·남성을 떠나 항상 저를 염두에 두세요. 배우로서는 정말 큰 행운이죠. 쉽게 도전할 수 없고, 상상하거나 가능성도 생각하지 못할 법한 작품들에 출연할 수 있으니 그것만한 축복이 어디 있겠어요”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심지어는 남성성이 짙은 캐릭터들을 연기하고 있지만 실제의 차지연은 늘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들여다보면서 때로는 소심한 겁쟁이가 되기도 한다. 작품 속 캐릭터 중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로 뮤지컬 ‘매디슨 카운팅의 다리’의 프란체스카를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부족한 면을 끊임없이 채워 넣어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죠. 매 순간 소심해지는 면은 살리에리와 닮은 것 같아요. 살리에리처럼 저도 스스로를 못난이로 여겼던 세월이 길었어요. ‘그런 면이 왜 내게는 없지’ ‘이게 부족하니까 못하지’ 등의 생각을 달고 살아요.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했지만 자신 있게 준비한 작품이 없어요. 매번 스트레스를 받죠. 살다 보면 누구나 그렇잖아요.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남과 비교하게 되고. 저도 그랬어요. 인간의 나약함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06년 뮤지컬 ‘라이온킹’으로 시작해 올해 데뷔 15주년을 맞은 차지연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이 국내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탑배우’로 정상을 당당하게 지키고 있다. ‘서편제’ ‘위키드’ ‘아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더데빌’ ‘레베카’ ‘명성황후’ ‘잃어버린 얼굴 1895’ ‘드림걸즈’ ‘카르멘’ ‘마리 앙투아네트’ ‘마타하리’ ‘호프’ 등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는 동안 그에겐 늘 ‘도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019년 4월 갑상선암을 진단 받고, 10개월여의 활동 중단 이후인 지난해 2월 ‘스테이지 콘서트 Vol.2-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같은해 5월 모노극 ‘그라운디드’로 복귀했다. 그리고 젠더 프리로 참여한 ‘아마데우스’까지. 또 현재 그는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이 극장에 진출하면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고, 4월에는 SBS ‘모범택시’에 지하 금융의 큰 손인 대모 역으로 10년 만에 브라운관에 나선다. 앞서 2011년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 특별 출연한 적이 있지만, 제대로 된 드라마 연기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10년 전에는 드라마 촬영 현장을 견학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작품에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역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잖아요.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커요. ‘저 배우는 무대뿐만 아니라 브라운관에 가서도 믿음을 주는 배우구나’ ‘저 배우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15년간 한 번도 정체되어 있던 적이 없는 차지연은, 여전히 도전하고 스스로를 다듬어가고 있다. “한 순간도 열심히 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그의 말은 단순히 하나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것을 넘어, 자신이 참여하는 작품에 대한 경외심을 담고 있다. 무대를 소중히 여기고, 작품에 예의를 지키는 것은 그의 배우로서 소신이기도 했다.
“저를 드러내기 보다는 작품이 돋보이게 하려고 늘 노력했어요. 그래서 실험적인 작품에 많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06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주로 뮤지컬을 해왔어요. 그렇다 보니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비슷한 작품, 비슷한 캐릭터를 연달아서 하지 않는 게 철칙이 됐어요.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