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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초점] 폭행에 가려진 ‘약자 조롱’…아카데미의 씁쓸한 뒷맛


입력 2022.04.05 10:24 수정 2022.04.05 10:24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할리우드 퇴출설 윌 스미스, 크리스 록 공연은 불티

지난 2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 시상에 앞서 의도된 연출인지 실제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참석자들은 물론이고, 국내 중계를 맡은 방송인 안현모와 영화평론가 이동진도 당황스러워하긴 마찬가지였다.


ⓒ연합뉴스

시상자로 선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뺨을 객석에 앉아 있던 윌 스미스가 갑자기 무대에 올라 내리치면서다. 삭발을 하고 시상식에 참여한 제이다 핑킷 스미스를 향한 농담이 남편인 윌 스미스의 심기를 건드렸다.


크리스 록은 “제이다! ‘지.아이.제인 2’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정보장교가 미 해군 ‘네이비 실’에 입소한다는 내용의 영화 ‘지.아이.제인’(1997)은, 촬영을 위해 데미 무어가 삭발을 감행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단순 농담으로 그칠 수 있었던 발언이지만, 문제는 제이다 핑킷 스미스가 삭발을 한 이유가 탈모라는 점이다.


윌 스미스는 당시 영화 ‘킹 리차드’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폭행 소동에 대해 사과했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크리스 록은 윌 스미스를 고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카데미 측은 내달 18일 진행되는 차기 이사회에서 윌 스미스의 수상 취소와 아카데미 회원 자격 박탈 및 제명 등을 고려하겠다고 전했다. 윌 스미스는 결국 징계 절차에 들어간 지 이틀 만에 아카데미 회원직을 자진 반납하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할리우드 퇴출 위기설도 불거졌다. 미국 연예 전문매체 할리우드 리포트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윌 스미스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영화 ‘패스트 앤드 루스’를 뒷전으로 밀어버렸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윌 스미스는 애플TV+의 드라마 ‘이맨시페이션’(해방)의 촬영을 끝낸 상황이나, 애플 측은 해당 작품 공개 여부에 대해 언급을 거부한 상황이다. 또 스미스는 오스카 이전에 ‘나쁜 녀석들4’의 대본을 받았으나 현재는 중단될 위기라고 한 소식통은 전하기도 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열린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윌 스미스의 따귀 사건을 풍자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코미디언 네이트 바가치가 검은 헬멧을 쓰고 등장해 “사람들이 이제 개그맨들은 시상식 쇼에서 농담하기 위해서 헬멧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반면 크리스 록은 뺨을 내주고 동정표를 얻은 모양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 록이 당시 뺨을 맞고도 침묵을 지켰다며 응원을 보내고 있고, 그의 라이브 공연 티켓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티켓 장터인 틱픽은 지난 달 동안 크리스 록의 투어 티켓을 합친 것보다 밤새 더 많은 양이 팔렸다고 밝혔다. 또한 시상식 직후부터 티켓 가격이 치솟아 최저 46달러에서 341달러로 약 8배가 올랐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윌 스미스의 폭행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고, 그에 대한 처분도 당연하다. 그런데 약자를 조롱한 크리스 록에게 동정표가 가는 것은 쉽게 납득하게 힘들다. 크리스 록을 옹호하는 일부 팬들 사이에선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 농담의 대상이 되는 건 숙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물리적 폭력이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듯, 선 넘는 무례한 농담도 마찬가지다.


제이다 핑킷 스미스는 오랜 시간 탈모로 고통 받았고, 그 사실을 여러 차례에 걸쳐 공개석상에서도 호소해왔다. 피치 못한 선택이었던 삭발을, 전 세계가 보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조롱한 것이다. 물론 크리스 록은 제이다 핑킷 스미스가 탈모를 앓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밝혔지만, 과거 흑인 여성의 모발에 관한 다큐멘터리 ‘굿 헤어’를 제작했던 크리스 록이라면 그 농담이 무례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을 터다.


혹자는 윌 스미스의 폭행 사건의 배경을 두고 ‘윌 스미스 가족이 약자가 아니’라며 농담의 수위가 높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명인이라고 해서 그들을 향한 무례한 ‘조롱’이 ‘풍자’로 바뀌지 않는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외모, 성별, 인종, 장애, 죽음 등은 절대 웃음거리가 될 수 없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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