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명 예비후보 복작이는 地選
'매운 맛' 보는 정치신인들 적잖아
뜬금없는 "국정농단 부역자" 공격
부터 '괴문서' 유포까지 천태만상
광역단체장 17명에 기초단체장 226명, 800여 명의 광역의원과 3000명에 가까운 기초의원을 새로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정당 내부에서 세 명씩만 경쟁한다고 해도 2만 명이 넘는 예비후보가 복작이는 큰 판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뛰어든 정치신인들도 적지 않다.
공천을 받은 후보끼리 겨루는 본선보다 '같은 배를 탄 동지'들이 서로를 뱃전 너머로 떠미는 당내 경선이 훨씬 지저분하게 전개되는 게 정치의 특징이다. "선당후사(先黨後私)"니 "원팀"이니 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강조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과정이 얼마나 너저분한지를 보여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여지 없이 정치판에 처음 뛰어든 정치신인들이 '매운 맛'을 톡톡히 보고 있는 사례들이 눈에 띈다.
더불어민주당과 새로운물결의 합당으로 거대 정당에 들어가 경선을 치르게 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졸지에 '국정농단 부역자'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얻게 됐다.
김 전 부총리의 민주당 경기도지사 당내 경선 경쟁자인 5선 중진 안민석 의원은 최근 방송에 출연해 "김동연 후보가 국정농단 그 시절에 부역자 역할을 했다는 팩트들이 있다"며 "실제로 팩트"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떤 내용인지) 말씀드리지는 않겠다"며 "그 내용을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빠져나갔다.
그렇다면 이재명 상임고문이 얼마전 대선 때 김동연 전 부총리와 손을 맞잡고 후보 단일화를 할 때, 왜 안 의원이 만류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자기 정당의 대선후보가 '국정농단 부역자'와 손을 맞잡은 것이 아닌가. 그 때는 미처 몰랐는데, 공교롭게도 김 전 부총리가 자신의 경쟁자가 되고나니 '국정농단 부역자'라는 '팩트'를 뒤늦게 알게 되기라도 한 것일까.
같은 방송에 출연한 김 전 부총리는 이 내용을 질문받자 "그냥 나는 품넓게 그분들이 하는 얘기를 받아주고 일일이 대꾸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실 대꾸하고 싶어도 방법도 마땅찮다. 반박할만한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이 적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전 부총리는 상고 출신으로 야간대학을 다니며 고시에 합격해 경제부총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나름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스스로 자부하겠지만, 정치판에 뛰어들자마자 '국정농단 부역자'라는 일격을 당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무런 구체적 내용도 없고 그 이후의 상황 전개도 없지만 '국정농단 부역자'라는 일곱 글자만 사람들의 뇌리에 막연히 남게 됐다.
본선보다 경선이 더 너저분한 정치판
360도 전방위 암습…혀 내두르기 일쑤
결국 국민·당원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정치꾼·브로커들의 활개 막을 수 있어
중앙일보 기자 시절 여야 정당과 청와대를 거치고 편집국장까지 지낸 뒤,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나와 정치 현안에 대해 평을 하던 국민의힘 김종혁 경기 고양시장 예비후보는 자신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자마자 '괴문서 파동'의 '매운 맛'을 본 사례다.
이제 겨우 예비후보 등록을 준비하는 단계인데 '국민의힘 고양시장 전략공천'이라는 제목 아래 김종혁 후보의 사진과 공개된 약력·프로필이 정리된 A4 용지 1장 분량의 괴문서가 일제히 고양시의 각종 카페와 밴드 등 SNS 공간에 유포됐다.
괴문서 본문에는 누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전략공천을 했다는 것인지는 언급조차 없다. 제목에 '전략공천' 네 글자가 박혀있는 게 전부다. 괴문서 유포와 함께 '이 사람은 뭔데 공관위가 구성도 되지 않았는데 전략공천을 받았다고 하고 다니느냐'는 부정적 댓글들까지 일제히 올라왔다. 일반 국민은 교만한 것을 가장 싫어하는데 그 점을 노려 예비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뇌리에 남기려는 수다.
급기야 지역언론에까지 보도돼 일파만파로 번졌다. 고소·고발을 하면 '정치를 시작하자마자 고소부터 한다'는 딱지를 붙이고, 반대로 가만히 있으면 '사실이니까 가만히 있는다'고 매도한다. 김종혁 후보 본인이 토로한대로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결국 고양시의회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한 뒤에, 질의응답 과정에서 "내가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했는데 이런 허접한 문서를 만들겠느냐"고 해명까지 해야 했다.
앞서 김종혁 후보가 쓴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뒤, 정치입문을 준비하고 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 책을 읽고 김 후보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유력 대선후보에게 조언까지 하던 사람도 자신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면, 들어가자마자 암수(暗數)에 한 방을 먹고 시작하는 세계다.
나름 사회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는 사람들도 360도를 가리지 않고 날아드는 정치판의 암습에는 혀를 내두르곤 한다. 정치꾼과 브로커들의 흉계가 '큰 판'을 맞이해 가장 크게 펼쳐지는 지방선거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할 제대로 된 동네 일꾼을 뽑는 방법은 국민과 각 정당의 당원·지지자들이 두 눈을 부릅 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수밖에 없다. 일 잘하는 '머슴'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