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전대 앞두고 '세대교체론' 비등
'86그룹'에 눌려 당 전면 못 나섰던
'97그룹' 활발한 움직임 주목 받아
더불어민주당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90년대 학번·70년대생인 '97그룹'이 당의 얼굴로 나서야 한다는 세대교체론이 부상하고 있다. 다만 전당대회 출마시 당권 획득이 유력한 이재명 의원이 자의로 '안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에서, 이들이 '바람'을 일으켜 이 의원이 '못 나오게끔'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의 새 지도부 선출을 염두에 두고 당내 '97그룹' 의원들의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병원 의원은 전날 "진지하게 여러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며 "역사적인 사명이 맡겨진다면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사실상 당권 도전을 시사했다. 이외에 강훈식·박용진·전재수 의원 등도 차기 지도체제와 전당대회 룰이 결정되는 방향을 검토하며 지도부 진입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외에서는 김해영 전 최고위원도 거론된다.
강병원 의원은 1970년생·89학번으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강훈식 의원은 1973년생·92학번으로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장, 박용진 의원은 1971년생·90학번으로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전재수 의원은 1971년생, 김해영 전 최고위원은 1977년생이다.
'97그룹'은 현재 민주당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는 '86그룹'의 바로 아랫세대이지만 오랫동안 전면에 나설 기회를 얻지 못했다. '86그룹'이 지나치게 장기간 당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젊은피 수혈론'을 내세운 2000년 총선을 통해 대거 정치권에 입문한 '86그룹'은 바로 윗세대인 50년대생 '천신정(54년생 천정배·52년생 신기남·53년생 정동영 전 의원) 그룹'이 동교동계를 밀어내기 위한 '정풍운동'을 일으켰을 때 이에 편승해 당의 중추를 형성한 뒤, 2007년 대선을 기점으로 '천신정 그룹'마저 쇠퇴하자 본격적으로 당을 이끌었다. 15년 이상 민주당을 이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민주당이 야당이었던 이명박·박근혜정부 시기를 거친 뒤 2017년 정권교체를 해냈지만, 이후 국정운영과 대선을 그르치며 5년만에 정권을 놓쳤다. 길게 봐도 정권교체까지가 '86그룹'의 역사적 사명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586의 사명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이 땅에 정착시키는 것"이었다며 "이제 그 역할을 완수했다"고 단언했다.
세대교체론 가장 큰 걸림돌은 이재명
'전대 불출마' 요구 응할 가능성 낮아
김병욱 "누구 나오지 말라할 게 아냐"
그렇다면 '97그룹'의 윗세대는 순순히 전당대회에 나서지 않고 자리를 내놓을까.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불출마하라, 용퇴하라는 외침은 선거에 패배하고 당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나오는 말"이라며 "용퇴하라고 해서 스스로 순순히 용퇴하는 경우가 어디가 있느냐"고 고개를 저었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 제기되는 세대교체론은 이재명·전해철·홍영표 의원 불출마론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중에서도 핵심 표적은 이재명 의원이다. 이 의원의 당권 획득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SBS가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민주당의 쇄신 방향에 관해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39.4%가 이재명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재편을 지지했다. 세대교체를 지지한 민주당 지지자는 32.6%였으며, 친문(친문재인) 그룹 중심의 재편을 희망한 민주당 지지자는 3.2%에 그쳤다.
'97그룹'의 입장에서 보면 세대교체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재명 의원인 셈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문제는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당권 획득이 유력한 인사가 남들의 "불출마하라"는 압박에 스스로 물러서는 전례가 없었다는 점이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를 앞두고 문재인·박지원·정세균 '빅쓰리 전대 불출마' 요구가 비등했으나, 이 중에서 정세균 후보만 불출마를 단행했을 뿐 문재인 후보와 박지원 후보는 그대로 당권에 도전했다.
2019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서는 김병준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60년대생인 오세훈 서울시장(1961년생)과 김태호 의원(1962년생)의 양자 대결을 구상하며, 황교안 전 국무총리(1957년생)의 당권 도전을 반대했으나 이 역시 일축되고 황 전 총리가 당권에 도전해 당대표로 선출됐다.
실제로 이재명 의원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이날 "누구누구 (전당대회에) 나오지 말라며 특정 부류에 대한 출마를 금지할 게 아니다"며 "7080년대생들이 이슈파이팅을 하며 당의 미래를 이끌겠다고 나오는 게 맞다"고 '이재명 불출마론'을 우회적으로 반박했다.
'못 나온' 사례 있어도 '안 나온' 적 없다
"'97그룹'이 스스로 '바람' 일으켜야
남은 시간과 기회, 많지 않을 수 있어"
1970년 신민당에 '40대 기수론'이 분출됐을 때, 유진산 총재가 이를 받아들여 순순히 양보를 했던 게 아니다. 직전해 제1야당 총재로서 해외순방까지 다녀오며 대권 도전의 꿈을 불태우던 진산은 구상유취(口尙乳臭)하다며 어떻게든 '진압'하려 했으나, 당원과 국민들 사이에서 양김씨를 중심으로 하는 '바람'이 일어나자 이에 굴복해 2선 후퇴하고 40대 김대중·김영삼 의원이 전면에 나서게 됐던 것이다.
2000년 민주당 '정풍운동' 때에도 정동영 최고위원이 청와대 당청 비공개 만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면전에 대고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후퇴를 요구하자, 권 최고위원 측은 김근태 최고위원을 '배후'로 지목하며 격렬히 반발했으나 민주당의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바람'에 맞설 수 없어 끝내 보름만에 당직을 내려놓고 물러났다.
아무리 "본인과 당을 위해 전당대회에 나서지 말라"고 외친들 이러한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여 스스로 '불출마'나 '용퇴'를 결단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재명 의원의 경우에도 지금으로서는 8월 전당대회에서의 당권 도전이 고민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상수(常數)'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결국 '97그룹'이 장작을 던져넣고 있는 세대교체론의 성패는 이들 신진 정치인들이 이재명 의원으로 하여금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못 나오게'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관측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연일 제기되는 대선·지방선거 패배 '이재명 책임론'이나, 이재명 의원이 당권을 잡을 경우 민주당이 '황교안의 길'을 간다, 또는 '이회창의 길'을 간다는 주장도 '세대교체'를 위해 끊임없이 불을 지펴야할 일"이라면서도 "그러한 네거티브에 그쳐서는 안되고 '97그룹'은 종래의 '86그룹'이나 이재명 의원과는 어떠한 다른 정치를 펼쳐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할 것인지 비전 제시가 관건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이준석 대표가 '나경원 나오지 말라' 또는 '주호영 나오지 말라'고 한 뒤, 실제로 그분들이 불출마를 해서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게 아니지 않느냐. 두 분이 다 나온 가운데에서도 '바람'을 타고 경선을 해서 당당히 이긴 것"이라며 "이재명 의원이 '불출마하라'는 요구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을 '97그룹' 의원들이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민주당 '97그룹' 의원들에게 시간과 기회가 많지 않을 수 있다"며 "85년생인 이준석 대표가 '바람'을 일으키자 '97그룹'인 김웅 의원의 지지세가 속절없이 빨려들어가 컷오프를 당했듯이, 국민들은 민주당 '97그룹'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86그룹'과의 차별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단숨에 세대를 뛰어넘어 그 아랫세대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