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안나’
OTT드라마 ‘안나’는 높은 몰입도와 긴장감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제작사인 쿠팡플레이가 감독과 작가와 상의 없이 8부작 드라마를 6부작으로 일방 편집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쿠팡플레이가 사과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안나’는 쿠팡플레이의 킬링 콘텐츠로 꼽히기도 한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유미(배수지 분)는 비록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기대를 받지만 음악선생님과 스캔들이 나면서 강제퇴학을 당하고 쫓겨나듯 서울로 학교를 옮긴다. 재수와 삼수를 거듭해도 원하는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유미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결국 학력과 무관한 마레 갤러리에 취업한다. 그곳의 갤러리 이사로 있는 현주(정은채 분)의 학력과 경력을 훔친 유미는 안나로 개명하고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가짜와 속임수, 부조리 등 사회에 만연한 불법적인 문제를 리플리 증후군으로 풀어냈다. 스스로 지어낸 거짓말을 믿어버리는 정신적 상태를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리플리 증후군을 다룬 대표작으로 부자인 고등학교 동창생을 죽이고 그 사람의 신분을 빌리는 알렝 드롱 주연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가 있다. 안나 역시 성공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학력을 조작하고 경력을 속이며 거짓말을 일삼는다. 안나는 고졸 학력으로 대학교수 자리를 꿰차고 정치인의 부인까지 되어 신분 상승을 시도한다. ‘안나’는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주인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만연한 거짓과 불법을 꼬집는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유미는 영특하며 피아노와 발레, 미술 등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가난이라는 벽 앞에서 무너져야 했다. 반면 현주는 유미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다. 안나로 개명한 유미는 현주의 인생을 훔쳤지만 현주 역시 논문대필로 학력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주의 학력과 경력은 부모의 욕망이 낳은 결과다. 현주는 유미를 향해 “내가 그것을 진짜 원했는지 가져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유미가 욕망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미는 자신이 원했던 사회적 명성을 얻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곧 불행한 것이다”라는 대사는 깊은 울림을 준다.
‘안나’는 배수지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배수지는 안나의 이중적인 삶을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 말간 얼굴에 티 없이 수수한 학창시절과 고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청년기를 지나 아름답다 못해 화려하고 우아한 중년의 모습까지 흠잡을 데 없는 안정되고 강렬한 연기는 인상적이다. 배수지 하면 10년 전 국민 첫사랑으로 각인된 영화 ‘건축학 개론’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배수지는 배우로서 가능성과 연기스펙트럼을 넓히며 그의 또 다른 인생작을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은 그동안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국가행복지수는 OECD 회원국 37개국 중에서 35위다. 이는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치열한 경쟁도 원인이며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사회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 때문일 수도 있다. 드라마 ‘안나’는 리플리 증후군에 빠진 유미와 타인의 욕망에 얽매여 자신의 욕망을 잃어버린 현주의 인생을 통해 우리가 과연 행복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