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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얼마면 볼래?①] 18만원 티켓도 등장…‘심리적 마지노선’ 깨졌다


입력 2022.10.23 14:14 수정 2022.10.23 14:14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VIP 티켓 16만원, '물랑루즈!'는 18만원

"물가상승 등으로 손익분기점 맞추기 힘들어...티켓값 인상 불가피"

"티켓값 아깝지 않은 공연 만드는 것에 초점 맞춰야"

최근 뮤지컬 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티켓 가격’이다. 이른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렸던 15만원(VIP기준) 공식은 이미 깨졌다. 공연제작사 쇼노트가 11월 개막을 앞둔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VIP 가격을 16만으로 책정하면서다. 얼마 지나지 않아 CJ ENM은 12월 선보이는 뮤지컬 ‘물랑루즈!’의 VIP석을 18만원의 가격을 매겼다.


뮤지컬 '물랑루즈' ⓒMatthew Murphy

국내 뮤지컬 티켓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을 가져온 ‘오페라의 유령’(2001)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기존 R석 5만원 수준이던 뮤지컬 티켓은 ‘오페라의 유령’ 공연 당시 R석 10만원, VIP석 15만원으로 책정했다. 약 두 배 이상의 가격 상승이 일어난 이후 2010년까지 R석 10만원, VIP석 12만원 수준의 가격은 대부분의 대극장 작품에서 유지됐다. 이후 2011년 R석 11만원·VIP석 13만원 시대가 열렸고, 2014년부터는 14만원까지 올랐다.


이런 변화를 거쳐 최근 4년간 대극장 뮤지컬 티켓 가격은 좌석의 등급에 따라 적게는 7만원(A석)에서 비싸게는 15만원(VIP석)을 유지해왔다. 작품의 규모나 출연진에 따라 제작비가 상이함에도 ‘시장 통상 가격’을 따라 대부분의 대극장 작품이 가격대를 맞춘 것이다.


4년 만의 티켓값 인상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제작사의 입장도 일리가 있다. 제작사 관계자에 따르면 뮤지컬 티켓 가격은 크게 대관료나 배우의 개런티, 인건비 등의 제작비와 로열티나 티켓 수수료 등의 공제비용, 그리고 제작사 수입까지 3개 항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물가의 상승, 주·조연 배우들의 개런티가 상승하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힘든 상황”이라며 “VIP비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대다수의 공연 제작사가 팬데믹 기간 동안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던 터라 이번 티켓값 인상으론 크게 폭리를 취하지 못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더구나 오픈런 공연이 아닌 약 3개월여의 리미티드런 공연으로 제작되는 우리나라 공연의 특수성과 인건비, 공연장비 대여료 등 전반적인 제작비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물랑루즈!' 한국 공연 캐스트 ⓒCJ ENM

‘물랑루즈!’의 경우, 이번 공연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제작진이 직접 참여하는 ‘레플리카 프로덕션’(무대·의상·소품까지 원작 그대로 재현하는 공연)으로 제작된다. 여기에 마돈나, 비욘세, 아델 등 세계적인 팝 가수들의 히트곡 70여곡이 넘버에 삽입되면서 높은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CJ ENM 관계자는 “뮤지컬 '물랑루즈!'는 브로드웨이에서 사전 제작비 2800만불(한화 약 396억원)로 제작된 초대형 작품이다. 국내에서 공연되는 ‘물랑루즈!’ 한국 프러덕션은 오리지널 창작진 및 제작진이 직접 참여하여 국내 버전으로 제작되는 퍼스트 클래스 레플리카 프로덕션이며, 전 세계 공통으로 같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무대·의상·소품·가발 등 피지컬 프러덕션의 대부분이 국내가 아닌 해외 지정 제작소에서 제작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리지널 제작진 등이 국내 제작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제작되는 국내 작품보다 제작비 규모가 크다. 또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작품에 70여곡의 팝송으로 이루어진 매쉬업 뮤지컬인 만큼 매우 높은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면서 “한국 뮤지컬시장 특성상 오픈런이 아닌 리미티드런으로 운영돼 제작비 규모에 맞는 티켓 가격을 책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뮤지컬 팬들도 높은 티켓값이 부담이 되지만, 이 같은 설명에 납득하는 분위기다. 다만 다른 작품들이 제작비와 무관하게 상승한 티켓가격을 따라가면서 ‘시장 통상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다. 주2회 뮤지컬을 본다는 A씨는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제작비 상승과 그로 인한 티켓값 인상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한다. 납득이 가능한 퀄리티의 작품이라면 충분히 높은 티켓값을 지불하고도 관극을 할 의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과거에도 그러했듯, 작품성이나 규모와 무관하게 가격만 올리는 작품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쇼노트

실제로 쇼노트의 티켓값 책정 이후 다수의 제작사들이 티켓 가격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욕을 먹을까 봐 선뜻 티켓 가격 인상에 나서지 못한 상황에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기점으로 많은 제작사들이 VIP석 16만원 책정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뮤지컬 시장의 구조적 문제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제작비 중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출연료’의 문제다. 2018년 발표된 박사 학위 논문 ‘한국 대극장 뮤지컬의 제작비 구조와 변화 분석’에 따르면 2009년 제작비 중 배우 출연료 비율은 19%였지만 2017년에는 31%로 치솟았다. 또 2017년 대극장 뮤지컬의 회당 평균 제작비는 6300만원. 톱스타가 출연하는 대작일 경우 회당 제작비가 8000만원~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톱스타 한 명이 가져가는 출연료는 회당 2000만~3000만원, 많게는 제작비의 30%를 차지하는 셈이다.


A씨는 “흔히 A급 배우가 나오는 회차는 빠른 속도로 매진되고 출연 자체만으로도 홍보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선 스타 캐스팅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인건비 상승이 결국 표값을 올리거나, 비싼 객석의 비율을 늘리는 식으로 관객에게 피해가 돌아온다”이라며 “더구나 제작비를 맞추기 위해 무대나 의상의 프로덕션 비율을 낮추면서 뮤지컬의 작품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결국 관객들은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면서도 스타 캐스팅에만 몰두한 공연의 질 낮은 작품을 볼 수밖에 없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공연장 관계자는 “물가 상승에 따른 티켓 가격 인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다만 무작정 티켓 가격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공연’을 만들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스타 캐스팅만으로 어차피 볼 사람은 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결국엔 한정된 팬덤의 수요만 남고 전체 뮤지컬 시장을 지탱하는 관객들이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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