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필리핀 전략 지역에 군기지 4곳 사용권 추가 확보
印尼, 中함정 감시 위해 군함·해상초계기·드론 배치
인니·필리핀, 해양안보 강화 위해 방위협력협정 서명
인니·말레이·브루나이, 상반기중 합동 군사훈련 추진
미국·필리핀 정부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에 따라 (필리핀) 전략지역의 군기지 4곳을 추가로 사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이 남중국해(南中國海)와 가깝고 중국 턱밑에 있는 필리핀의 미군기지 4곳에 대한 사용권을 추가로 확보한 것이다. 중국의 숨통을 노리는 모양새다.
미국의 필리핀 군기지 추가 확보는 미국이 지난달 일본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를 개편해 2000명 규모의 해병연안연대(MLR)를 창설하기로 하는 등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필리핀 입장에선 중국 해안경비대와 해상민병대가 필리핀 어선을 쫓아내는 등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격해지자 미국에 더 밀착하게 됐다.
두 나라는 그러나 미군이 추가 사용권을 확보한 군기지 지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30일 미국이 필리핀 루손섬 카가얀섬 등 필리핀 내 4곳의 미군기지를 확보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은 2014년 체결된 EDCA에 따라 필리핀 내 안토니오 바티스타·바사·룸비아·막탄-베니토 에부엔 등 공군기지 4곳과 포트 막사이사이 육군기지 1곳에 병력을 순환배치할 수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 대만과 가까운 루손섬에는 미군기지가 없었는데 이번에 추가되는 것이다. 루손섬은 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 교두보로 꼽힌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미국·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중국 사이에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중국과 패권다툼을 벌이는 미국과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 중인 동남아 국가들이 서로 긴밀한 협력체계를 갖춰 ‘반중(反中) 깃발’을 높이 들고 나서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이 대규모 매장돼 있고, 연간 해상물동량도 3조 4000억 달러(약 4156조원)에 이르는 전략적 해상 요충지다. 중국과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남중국해 주변국들이 영유권 등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잠재적인 ‘화약고’이기도 하다.
특히 남중국해 배타적경제수역(EEZ) 개발에 나서면서 중국과 충돌할 공산이 커진 인도네시아는 베트남과 오랫동안 지속된 갈등의 매듭을 풀고 최대 현안이던 EEZ 획정 협상을 타결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응우옌 쑤언 푹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인도네시아 EEZ 안에 있는 나투나제도(諸島) 인근 대륙붕 ‘투나 블록’ 개발 프로젝트에도 최대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북(北)나투나해를 포함한 나투나제도에 수시로 출몰하는 중국 해안경비대를 감시하기 위해 군함 등을 배치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락사마나 무함마드 알리 인도네시아 해군 소장은 “중국 선박 감시를 위해 군함과 해상 초계기, 드론 등이 실전 배치됐다"고 말했다.
북나투나해는 북쪽으론 남중국해, 동쪽으론 칼리만탄, 서쪽으론 싱가포르 해협에 둘러싸인 바다다. 하지만 중국은 구단선(九段線)을 앞세워 인도네시아와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구단선은 중국이 남중국해 관할권 경계를 표시한 가상의 선이다. 남중국해를 혓바닥 모양으로 둘러싼 구단선을 긋고 해당 해역(350만㎢)의 90%를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한다.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인도네시아·베트남은 지난 10여년 간 EEZ 범위를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인도네시아는 나투나제도 인근에서 조업하는 베트남 어선 수십척을 나포하고 때론 어선들을 박살내기도 했다. 2017년에는 인도네시아가 베트남 어선 5척 나포에 나서자 베트남 함정들이 나서 구출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런 두 나라가 과거 앙금을 씻고 EEZ 협상을 타결하며 대륙붕 개발에 나섬에 따라 중국에 맞설 대항 세력으로서의 존재감도 커질 전망이다. 중국이 구단선 내 인공섬을 건설해 군사기지화함으로써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은 물론 미국 등 국제사회와도 마찰을 빚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중국의 구단선이 국제사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북나투나해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자국의 EEZ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구단선에 대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남중국해 무인도에 인공섬을 만들어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등 공격적 진출을 감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 협력관계를 구축한 나투나제도 인근 해역도 중국의 구단선 안에 들어가 있다. 나투나제도는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는 1500㎞, 인도네시아에서는 270㎞ 떨어져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인도네시아가 베트남과 EEZ 협상 타결로 중국 대응에 탄력을 받게 됐다”며 “인도네시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교훈 삼아 (중국의 도발 등) 남중국해에서의 예상치 못한 사태를 경계하고 대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도네시아는 한발 나아가 남중국해 주변국들과의 긴밀한 협력체제를 갖췄다. 지난해 9월 필리핀과 해양안보 강화하는 방위협력협정에 서명했다. 테러대응과 국경관리 등 안보 분야 뿐아니라 에너지와 해상개발, 교육, 보건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말레이시아·브루나이와는 상반기 중 나투나제도 인근 해역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군은 미국·일본·호주·인도간 다자 안보협의체 ‘쿼드(Quad)’와 공동 군사훈련도 검토 중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필리핀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은 그동안 중국 구단선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고 전했다.
이에 중국은 거세게 반발했다. 중국 정부는 인도네시아·베트남의 EEZ협정 타결에 “남중국해의 해양경계 획정협상은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우스춘(吳士存) 중국 남해연구원장은 “지역적 반발이 커지면 중국이 해군이나 해안경비대 등 해상 억지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말 해안경비대 소속 대형 함정을 나투나제도 인근해역으로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콜린 고 싱가포르 국방전략연구소(IDSS) 연구원은 “루비콘강(돌이킬 수 없는 지점)은 건너지 않으면서 불쾌감을 표현하는 중국 정부의 위력 시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이 인도네시아 등 남중국해 주변국들을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인도네시아 인구가 2억 7300만명에 이르는 데다 필리핀(1억 1400만명)·베트남(9700만명)·태국(7200만명)과 연대 가능성도 상존한다.
인도네시아가 중국과 북나투나해를 놓고 신경전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PCA가 중국의 구단선 주장은 법적근거가 없다고 결정한 뒤 인도네시아는 2016년 인도네시아의 EEZ인 나투나제도 주변해역을 현지 주민들이 부르던 '북나투나해'로 명명했다. 나투나제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그 주변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인도네시아가 중국의 눈치를 보던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까지 끌어들여 반(反)중국 전선이 확대됐다. 안디카 페르카사 인도네시아 군 최고사령관은 "올해 '슈퍼 가루다 실드' 훈련에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가 참가하는 구체적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슈퍼 가루다 실드는 미국과 인도네시아가 중국 압박 목적으로 남중국해에서 실시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이다.
중국계 자본과 화교의 경제적 영향력이 큰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는 지난해 8월부터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최대 해상훈련 '다국적 환태평양훈련'(RIMPAC)에 두 나라가 처음으로 참여했다. 림팩 역시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한 훈련이다.
더군다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3국은 남중국해에서 별도의 연합훈련도 실시하기로 했다. 페르카사 사령관은 “중국을 겨냥한 훈련”이라고 단호하게 못 박았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상황이 남중국해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에 대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