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의 ‘관세전쟁’ 본격화하지 않았는 데도 경제지표 부진
지난 1~2월 수출·CPI, 전년 동기比 각각 7.1%, 0.7% 급락
中 정부, 全國人大서 올해 최우선 과제 내수 진작 내걸어
소비 회복 위해선 헬리콥터로 돈 뿌리겠다는 결연한 의지
중국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돈폭탄’을 퍼부을 채비에 들어갔다. 중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양대 축인 수출과 내수가 올 들어 동반 부진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12일 리창(李强) 총리 주재로 열린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가 확정한 올해 '5% 안팎'의 경제성장률 목표달성을 위한 연간 중점 업무는 소비를 크게 진작하고 투자 효과를 높이며 전방위적으로 국내 수요를 확대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 등이 보도했다.
중국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전국인대를 통해 내수 진작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중국공산당이 예상보다 나쁜 경제지표에 전국인대 폐막 불과 하루 만에 중앙정부에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면서 다급함을 드러냈다는 관측이 나온다. 리웨이(李偉) 중국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소 부연구원은 "전국인대 폐막 후 국무원 상무위원회가 바로 소집된 것은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긴박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 수출과 내수가 연초부터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중국의 올해 1~2월 수출은 미국과의 ‘관세전쟁’이 본격화하지 않은 상황인 데도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중국 해관총서(海關總署·관세청)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첫 두 달간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증가했다. 지난해 12월(10.7%)이나 전년 같은 기간(7.1%)보다 급감했다.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이 전문가들 대상으로 조사해 집계한 예상치인 각각 5%, 5.9%와 비교해도 반토막 수준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미국과의 관세전쟁 여파로 중국의 수출실적이 지난해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연초부터 사정이 훨씬 더 나쁘게 나온 것이다.
특히 내수경기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CPI) 역시 13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달 CPI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0.7% 급락했다. 중국 CPI가 ‘마이너스’로 전환한 것은 지난해 1월 이후 처음이다. 하락 폭도 로이터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0.5%)를 뛰어넘었다.
'디플레이션(디플레)의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발(發) 관세전쟁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몰려오고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 과잉생산 등의 문제로 중국 경제가 좀체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판국에 디플레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게 중국 경제 전문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디플레는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을 뜻한다.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인플레)의 대척점에 서 있는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물가가 떨어지면 기쁜 소식이지만. 경제학계에서 디플레는 '최악의 현상'이라고 부른다. 인플레는 통화정책을 통해 해결해볼 수 있지만, 디플레는 정책으로도 어찌할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디플레가 발생하면 소비자들이 물건 사기를 꺼린다. "내일 물건 값이 더 떨어질 텐데 기다리자"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업들은 생산을 줄이고, 생산이 줄어들면 고용이 감소하고, 고용이 감소하면 다시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디플레의 늪'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중국의 경기부진 신호를 드러내는 지표는 CPI뿐만이 아니다. CPI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지난달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 떨어지며 29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미국 등 다른 주요국들이 인플레를 걱정하는 사이 오히려 중국만 디플레와 경기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당황한 중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돈 풀기에 두팔을 걷었다. 리 총리는 올해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소비진작을 정책 1순위로 꼽으며 “소비 확대는 경제 성장의 주요 원동력이자 안정의 닻이 돼야 한다”며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특별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5% 안팎 달성을 위해서는 하늘에서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내수를 진작함으로써 미국의 관세전쟁에 돌파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가 내수 확대를 가장 먼저 언급하고 소비를 31번이나 외치며 올해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은 그만큼 중국 경제성장에 소비심리 회복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국내 소비 촉진에 올해 경제정책의 중심을 맞춘 건 트럼프의 관세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며 “중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성장률을 유지할 각종 경기부양책을 계속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중국 정부가 올해 CPI 상승률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1%포인트 낮춰 2%를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중국 CPI 목표치는 3%였지만 연간 CPI 상승률은 0.2%에 그쳤다. CPI 목표치가 3% 아래로 설정한 것은 2004년 이후 무려 21년 만이다. 사실상 중국 정부가 저물가 기조를 인정했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게 어려운 만큼 올해 경기부양에만 4조 8300억 위안(약 970조원)을 쏟아부어 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관세전쟁에 대응하겠다는 복안이다. 중국 경제의 주력을 수출에서 내수로 돌려 위기를 타개하려는 불가피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율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1%포인트 높은 4%로 잡은 것도 얼어붙은 내수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적자 규모는 5조 6600억 위안으로 지난해보다 1조 6000억 위안이나 늘어난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뜻이다.
중국은 올해 초장기 특별국채를 지난해보다 3000억 위안 늘어난 1조 3000억 위안 규모로 발행하고 이 중 국유 상업은행의 자본 확충에 5000억 위안, 3000억 위안을 소비재 이구환신(以舊換新·낡은 제품을 신제품으로 교체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에 쓰는 등 수요 진작책을 전방위적으로 펼쳐 올해 기필코 5%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정부 채무상환 등을 위해서는 4조 4000억 위안 규모의 특별채권도 발행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가 재정 부담과 시장 우려에도 공격적으로 내수 진작에 나선 것은 미국의 관세전쟁 대응과 체제 안정이라는 내외부 요인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내수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중국 중앙은행도 언제든 가세할 태세다. 중국 인민은행은 기준금리와 은행 지급준비율을 각각 인하, 시장에 유동성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판궁성(潘功勝) 인민은행장은 6일 "국내외 경제금융 상황 등을 감안해 적당한 기회를 택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며 "현재 6.6%인 시중은행 지급준비율(지준율)을 감안할 때 지준율도 하향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과거 2년보다 올해는 5% 성장률 달성이 더 버거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두차례에 걸쳐 10%씩 관세율을 인상하는 등 양국간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한달 사이 관세율이 20%나 인상되며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종전 25%에서 45%로 치솟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공언한 60% 이상의 관세율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5000억 달러(약 726조원) 이상의 제품을 수출하는 미국 시장이 관세장벽으로 막힐 경우 중국의 수출은 크나큰 타격이 예상된다. 동시에 미국 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장벽이 마찬가지로 높아지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리 총리는 이런 상황을 "1세기 동안 보지 못했던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더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글로벌 주요 기관들은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4%대 초중반으로 낮춰 잡고 있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