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가 용인했던
'제3자 거래' 불허할 듯
윤석열 정부가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강조해온 가운데 대북 인도적 지원 관련 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지원 자격은 완화하되 절차적 투명성은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통일부는 23일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 및 협력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인도적 대북지원 제도를 정비하겠다"며 '대북지원 사업자 지정 제도'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행정예고 등 관련 절차를 거쳐 4월 중 시행될 예정이다.
대북지원 사업자 지정 제도는 대한적집자사로 일원화돼있던 '지원 창구'를 확대한다는 취지에서 지난 1999년 도입됐다. 이달 기준으로 사업자 자격을 얻은 단체는 총 150개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에는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 돌파구로 민간 협력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문 정부는 같은 해 남북교류협력기금 100억원을 사업당 5억원 한도에서 전액 지원하는 '대북 영양·보건협력 정책사업'까지 도입했다.
해당 사업과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100억원으로 시작했는데 11억2000만원만 실제 지원됐다"며 "10% 정도만 실제 지원이 이뤄진 것이다. 정부 기금 100% 투입 사업을 다시 할 것인지 신중하게 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문 정부는 지원 활성화를 위해 중국 무역상이 개입하는 '제3자 거래'까지 인정해줬지만, 불투명성만 키웠다는 지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쪽의 (남측 지원물자에 대한) 명시적 거부 때문에 간접적·우회적 경로를 택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지원경로가 매우 복잡해졌다. 지원 내역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 증빙서류를 위조·변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은 2019년부터 남측 지원물자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에서 창궐한 코로나19 여파로 이듬해부터는 북한 국경에 봉쇄령까지 내려졌다. 남북 단체들이 직접 계약을 맺어 진행하던 양자 차원의 대북지원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이유다.
이에 문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제3자 거래를 용인했다. 중국 단체가 남북 단체와 각각 계약을 맺은 뒤, 남측 재원으로 물품을 구입해 북측에 전달하는 구조다. 때문에 중국 단체가 계약사항을 온전히 준수했는지 검증이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제3자 거래가 표면상 '북중 무역'으로 처리된다는 데 있다. 녹록잖은 정세에도 남측이 손을 내밀고 있다는 '메시지'가 북한 당국 및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셈이다. 특히 대북 영양·보건협력 정책사업의 경우, 국민 세금으로 추진됐던 만큼 '묻지마 지원'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우회 지원' 시 북측이 남측 지원이라는 것을 인지하느냐는 질문에 "모르게 하는 게 제3자 거래의 포인트"라며 "모르는 척하거나 모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3자 거래를 막연히 지원하기보다 저희 입장을 분명히 가져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명료하고 단순한 방식이 아니면 지원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 해외동포원호위원회 등 (북측) 대외기관이 합의해서 받는 방식이 다시 복원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처럼 남북 양자 차원의 인도적 지원만 승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이번 제도 정비로 "규제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 입장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지정된 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누구나 인도적 지원을 추진할 수 있지만, 북한이 사업 성사의 키를 쥐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일부 당국자는 실향민이 기탁을 통한 대북지원을 희망할 경우 "예전에는 대북지원 사업자를 찾았어야 했다"며 "(이제는) 그런 '루트'나 '라인'만 찾을 수 있다면 (개인 자격으로도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누구든 대북지원을 추진할 수 있지만, 북한 단체와 직접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라인'부터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북한이 남측 지원 거부 기조를 유지하는 한, 실질적 지원은 불가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