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질·재해 통합 관리 위한 ‘일원화’
잇따른 수해, 능력 부족 논란 나와
물관리 업무 국토부 이관 가능성도
“물관리 업무를 제대로 해라. 환경 보호도 중요하지만, 국민 생명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
환경부 물 관련 정책이 위기에 처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직접 장관을 꾸짖으며 정책 보안을 주문했다. 자칫하다가는 ‘물관리일원화’를 이유로 국토교통부로부터 넘겨받은 권한마저 고스란히 돌려줘야 할지도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8일 최근 수십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수해 사태와 관련해 한화진 환경부 장관에게 “물관리 업무를 제대로 하라”고 경고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비공개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환경 보호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 발언은 단순 지적으로 치부할 수준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수해 때 수계에 대한 디지털 시뮬레이션과 부처 간 데이터 공유를 지시했음에도 아직 이행하지 않은 지점에 관해 문제 의식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천과 하천 강바닥이 너무 높아져 있어 준설이 필요하다”며 “환경부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국토부로 넘겨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 발언을 종합적으로 보면 결국 대통령은 이번 수해 참사 가장 큰 책임을 환경부에 물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원화 5년 만에 권한 반납 위기
환경부는 지난 2018년 ‘물관리일원화’를 이유로 국토교통부와 나눠 하던 수량, 수질, 재해 관리 등 업무를 일괄적으로 넘겨받았다. 물관리 체계가 부처마다 쪼개져 통합적인 물관리 정책 부재, 부처 간 업무 중복, 과잉 투자, 비효율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2018년 6월 8일 물관리일원화 정부조직법을 공포·시행하면서 하천관리를 제외한 수량, 수질, 재해 예방 등 물관리 기능 대부분을 환경부로 일원화했다.
국토교통부에서 환경부로 인력 188명(본부 36명, 소속기관 152명)과 약 6000억원 예산을 이전했다. 2020년 12월에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하천관리 기능까지 모두 환경부로 이관하면서 물관리일원화 정책을 완성했다.
환경부와 정부는 물관리일원화 장점으로 ‘지속 가능한 통합 물관리’를 강조했다. 과거에는 수질 관리를 위한 수계관리위원회와 수량 관리를 위한 하천위원회가 분리돼 유역 내 상·하류 물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고, 갈등도 장기화했다는 게 환경부 설명이다.
환경부는 수량관리와 수질 관리 체계를 통합하면 수량, 수질과 수생태계를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책임감 있게 물 문제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수질·수량 정보체계를 공유하면 환경용수 활용 기반을 마련해 하천을 종합·입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이·치수, 수질·수량과 수생태계 등 지역의 물 문제를 해결하는 협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더불어 통합 물관리는 최대 12조원의 경제적 가치가 있고, 추가적인 댐 건설 없이도 연간 약 12억2000만t의 물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20년 숙고한 정책…환경부, 반면교사 필요
이번 대통령 발언이 곧장 권한 재이양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관리일원화 자체가 20년 이상 숙고 끝에 추진한 사업이기 때문에 당장 국토부로 권한을 다시 넘기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물관리일원화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고한 사업이기도 하다. 현재 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23개국이 환경부에서 물관리 업무를 통합하고 있다.
환경부 물관리 능력에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권한 이양보다는 먼저 정책 재설계 등을 통해 부족한 지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26일 기자들과 만나 물관리 업무 관련해 “현재로서는 있는 제도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해야 할 것 같다”며 “지난해 1월 마지막 남은 물관리 기능이 모두 환경부로 간 상황이어서 최대한 현 체제 내에서 장관과 조직이 국가의 어떤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환경부가 대통령으로부터 물관리 정책 전환을 지시받은 만큼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대통령이 사실상 ‘포스트 4대강’을 추진하는 만큼 향후 물 관련 정책 방향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실상 환경부 물 관련 정책에 불만을 직접 표현한 만큼 환경부도 고민을 해야 한다”며 “적어도 강이나 하천과 같은 것들을 환경문제만큼이나 재해 예방과 안전 강화를 지금보다 더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물관리일원화에도 불구하고 2020년 지방하천 관리 권한이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가 환경부와 지자체 간 정책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대한하천학회장)는 “국토부가 가지고 있던 하천관리 기능이 환경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상당히 혼란이 있었다”며 “지방하천도 환경부가 관리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지자체 관할로 돼 있다 보니 예산도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돌려 하천사업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식으로 운영됐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되어있으니 하천관리 기능이 국토부에 있을 때보다 느슨해진 것”이라며 “기존 조직을 재정비해서 지자체에 이양했던 지방하천 관리기능을 찾아와 정비를 하는 등 하천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조실 출신 차관 특명은 ‘포스트 4대강’ 만들기 [4대강 재점화④]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