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분 병문안 …문재인 퇴임 후 첫 서울행
文, 손 부여잡고 "결기 충분히 보였다"
만류에도 이재명 "잘 알겠다"고만 답해
체포동의안, 21일 본회의에서 표결 전망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상경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찾아가 손을 부여잡고 단식 중단을 설득했는데도, 이 대표는 단식 중단 여부를 확답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의 방문이 '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음에도 결과적으로 '수액 단식'이 이어지게 되면서, 이 대표의 단식이 계속되는 이유와 목적을 놓고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를 찾았다. 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첫 서울행이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오후 3시 30분쯤 이 대표가 입원 중인 녹색병원을 찾아 23분간 이 대표를 병문안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의 손을 꼭 잡고 "단식의 진정성이나 결기는 충분히 보였고 길게 싸워나가야 한다"라며 "국면이 달라지기도 했으니 빨리 기운을 차려서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싸우는 게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이 대표 혼자의 몸이 아니다"라며 "많은 사람이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는 것을 늘 생각하라"라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지난 18일 탈수와 정신 혼미 등 단식 장기화에 따른 건강 악화로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급히 이송된 바 있다. 이후 생리식염수 투여 등 응급조치를 받은 후 회복 치료를 위해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대표는 이날로써 단식 '20일째'를 맞았지만, 잇따른 당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수액 치료만 받고 음식은 전혀 먹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 중인 상태다.
문 전 대통령이 "링거랑 수액만 맞고 곡기는 여전히 안 한다더라"라는 말을 건네자, 이 대표는 "(곡기) 생각이 없다"라고 답했다. 또 이 대표는 정부·여당을 겨냥한 듯 "무슨 생각으로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이어진 두 사람의 비공개면담 후 기자들을 만나 "이 대표가 자신의 단식 취지에 대해 '끝없이 떨어지는 나락 같다. 세상이 망가지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 대변인은 이 대표가 자신의 '단식 중단'에 대해선 "문 전 대통령의 여러 차례 중단 권유를 듣고 '알겠다, 잘 알겠다'는 정도의 답변을 했다"라면서 "오늘 자리에서 (단식을) 중단하겠다는 말씀은 하지 않은 걸로 전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체포동의안에 대한 우려 뜻을 전하거나, 어떤 이야기가 있었나'란 질문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말씀은 없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단식 '동정론'과 당내 체포안
부결 여론 확대까지 두 마리 토끼 잡아
병원 방문 때 李 지지자 일부 "文 출당"
외쳐…李 "지금은 외부와 맞설 때"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전 대통령의 병문안이 이 대표 단식의 '출구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대다수는 문 전 대통령이 오더라도 단식을 중단시키는 변수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목전에 닥친 체포동의안 정국과 관련해, 단식과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목소리가 맞물려 돌아가는데 따른 것이다.
일부 친명계 의원과 지역 원외 인사들은 앞다퉈 '체포동의안이 오면 부결시켜야 한다'는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들은 연일 당내 의원들을 압박해 '부결 의원 리스트'를 만드는 한편, 이들과 체포동의안에 대해 주고받은 메시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하는 행태도 이어가고 있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을 합친 구속영장은 공교롭게도 이 대표가 병원에 이송되던 날 청구된 바 있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오는 21일 본회의에서 표결이 될 전망이다.
이 대표로서는 단식 정국 장기화에 따른 건강 악화로 인한 '동정론'과, 이에 수반되는 효과인 '체포동의안 부결 여론 확대'란 두가지 긍정 효과를 동시에 거머쥐게 됐다. 결국 이 대표의 단식은 이 대표 본인이 쓰러지거나, 당초 내걸었던 것처럼 정부·여당에서 단식에 대한 전향적 반응을 보일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친명(친이재명)계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CBS라디오 '뉴스쇼'에서 "(이 대표가) 내가 쓰러질 때까지, 혹은 저기에서 단식 목적에 무언가 호응하는 게 나올 때까지는 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가 아주 강하다"라며 "그 의지를 전혀 꺾지 않는 상태로 지금 있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한 '건강 상태가 안 좋아서 멈출 것이다'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국회에서의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 예측과 관련해서는 "아직 넘어오지 않았는데, 부결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정권을 향한 칼날이 지금 들어오고 있지 않느냐. 그런 차원에서 이 대표의 단식을 충분히 공감한다는 차원에서 병문안을 갔을 수는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의 말을 듣고서 단식을 그만둘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위상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문 전 대통령이 병원을 방문할 당시, 이 대표의 지지자 일부는 손피켓을 들고 '문재인을 출당하라'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이어갔다.
이와 관련, 이 대표는 이 같은 일각의 행태를 강하게 질타하면서 "문 전 대통령은 당의 큰 어른이다. 민주당이 하나로 단결해 적과 싸워야 할 지금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시는데, 민주당 지지자라면서 어찌 비난하느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당의 분열은 상대가 가장 바라는 바이다. 우리 안의 차이가 아무리 크다 한들 상대보다 크지 않다"라며 "지금은 단결해 외부의 무도한 세력과 맞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