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가 예산안 타결에 실패하면서 미국 연방정부가 업무를 중단하는 ‘셧다운’(업무 일시 중단) 사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셧다운을 피하려면 의회가 내년도 회계연도가 시작하는 10월 1일 0시(현지시간) 전에 정부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데, 시한을 불과 하루 남겨둔 상황에서 임시예산안조차 부결됐기 때문이다.
미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 등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이 주도한 임시예산안은 29일 하원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찬성 198표 대 반대 232표로 부결됐다.
셧다운은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거나 임시예산안 시한이 종료될 때까지 의회가 세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해 연방정부가 필수 기능만 남기고 업무를 중단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국회가 예산안을 제때 처리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전년도 예산안에 준해 우선 예산을 집행할 근거가 헌법에 마련돼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의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예산을 받지 못하는 만큼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내년도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 공화당이 정부 예산안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은 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탓이다. 매카시 의장은 양당 간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자 협상 시간을 벌기 위해 10월 한 달 정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담은 임시예산안을 표결에 부쳤다.
그러나 이 안 역시 국방과 보훈, 국토안보, 재난구호 등 일부 기능을 제외한 정부 지출을 30%가량 삭감하고 국경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까닭에 민주당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의장이 올해 5월 합의한 지출 총액보다 정부 예산을 더 줄였다면서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물론 하원 의석은 공화당 222석, 민주당 212석으로 공화당이 과반이 넘기 때문에 민주당이 전부 반대해도 자력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공화당 내 강경파 21명이 반대표를 던지며 이 안이 부결됐다. 임시예산안의 삭감 정도가 충분하지 못하며, 훨씬 더 많이 예산을 깎아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이 같은 ‘한달짜리’ 임시예산안마저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바람에 연방정부가 셧다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우려가 나온다. AP통신 등은 “연방정부 셧다운이 거의 확실해졌다”고 전했다.
상원에서는 지난 16일 민주당과 공화당이 11월17일까지 필요한 정부예산을 확보하는 임시예산안에 초당적으로 합의했으며 이번 주말 처리를 시도할 방침이다. 이 안은 하원 공화당 안과 달리 민주당 쪽 주장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지출 규모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용 예산 60억 달러(약 8조 1000억원)와 재난 구호용 60억 달러를 포함했다.
하지만 매카시 의장이 상원안이 하원으로 넘어와도 상정하지 않겠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만큼 하원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다 예산안 통과의 키를 쥐고 있는 공화당 강경파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경파는 연방예산 삭감을 위해서는 셧다운도 불사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끝내 의회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10월 1일 0시부터 셧다운이 시작된다. 예산을 받지 못한 연방정부는 미군과 연방 공무원 등 400만명가량에 대한 급여 지급을 중단하게 된다. 국방과 교통, 보건 등 분야에서 필수 업무를 맡은 공무원들은 무급 근무를 계속하지만 비필수로 분류되는 공무원들은 ‘일시 해고’(furlough) 상태에 들어간다. 국방부의 경우 군무원들이 일시 해고되고, 현역 군인들이 그 업무를 대신하는 식이다. 필수 분야의 부처 내에서도 근무 인력을 줄이기 때문에 업무처리 지연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지난 1976년 이후 21차례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를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8년에는 역사상 최장인 34일 동안 연방정부 기능이 정지됐다. 샬란다 영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셧다운으로 “국내총생산(GDP)이 0.1∼0.2% 감소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