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핼러윈에 '이태원 가겠다' 글 안 올라와…참사 1주기 앞두고 조심스러워 하는 눈치"
상인들 "참사 이후 상권 자체가 달라져, 코로나 때보다 사람 더 안 다녀"…29일 임시휴업 가게들 봇물
이태원 일대 핼러운 관련 상품들 찾아볼 수 없어…온·오프라인 유통기업들, 올해 핼러윈 마케팅 축소
전문가 "젊은 층, 피해자 추모 사회분위기 해치지 말자는 인식 형성…공감·연대 긍정적으로 보여"
올해 핼러윈 데이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이태원 거리는 시끌벅적 화려한 축제가 펼쳐지던 예년의 모습과는 달리 '조심스러운 핼러윈'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다수 시민들은 오는 29일 참사 1주기를 맞아 조용한 추모를 하겠다는 반응이고, 상인들도 임시 휴업을 예고하는 등 이런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는 추모 메시지를 적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10.29 기억과 안전의길' 조성 공사가 진행돼 골목으로의 접근은 불편했지만 시민들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추모 메시지를 적었다.
메모지에는 "편히 쉬어라",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각난다", "이태원에 온 김에 인사드리러 왔다", "하루도 잊은 적 없다", "기억하겠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영어나 일본어로 된 추모의 메시지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참사 1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안전대책의 중요성을 거듭 되새겨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날 이태원에서 만난 대학생 A씨(20대)는 "작년 핼러윈 때 파티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왔었다. 당시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발 디딜 곳조차 없었는데 오늘은 너무 한산해서 놀랐다"며 "아직 작년에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올해는 아마 조용히 보내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B씨(20대)는 "작년에는 군 복무중이라서 오랜 만에 이태원을 찾았다. 안 온 사이에 상권이 많이 죽은 것 같다"며 "올해는 SNS에 '이태원에 가겠다'는 글이 싹 사라졌다. 다들 핼러윈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사고가 일어났던 세계음식문화거리 상황도 참사 전과 비교해 달라진 모습이었다. 본격적으로 거리에 활기가 돌아야 할 오후 5시에도 음악만 들릴 뿐 골목은 한산했다. 가게에만 손님 몇 팀만 있을 뿐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이태원 골목에서 수년째 사주카페를 운영 중인 자영업자 C 씨는 "참사 이후 상권 자체가 달라졌다. 코로나19 때보다 더 심각하게 장사가 안된다"며 "평일엔 특히 사람이 없다시피하다. 주말이나 돼야 사람이 돌아다니는데,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나고 나니까 국민들도 조금씩 잊어 가는 것 같다”며 "이번 핼러윈을 기점으로 (상권 분위기가) 어떻게 변하는지가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오는 29일 참사 1주기 당일 가게 문을 아예 닫겠다는 곳도 있었다. 한 술집은 "1년 전 뜻하지 않게 먼저 떠난 안타까운 생명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10월 29일 일요일 임시휴업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뒀다. 한 사주카페 역시 핼러윈 기간 추모를 위해 임시휴업을 하겠다는 안내문을 붙혔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일대 옷 가게들에도 핼러윈과 관련된 상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핼러윈을 맞아 코스튬과 기념굿즈 등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했던 지난 해와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실제 온·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은 올해 핼러윈 마케팅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진행하지 않고 있다. 참사로 인한 국민 정서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다시 이태원에 젊은 층이 모이면서 일각에서는 우려할 만한 사태가 반복될 수 있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젊은 층들이 지난해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기억을 여전히 갖고 있고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해치지 말아야겠다는 인식을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경쟁주의적인 분위기에서도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내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회구성원을 배려하려는 기본적인 소양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