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기관의 의뢰로 작곡 공모 심사를 했다. 1위로 뽑힌 곡이 제법 수작이었으나 주최 측으로부터 AI를 사용해 만든 곡이란 통보를 받았다. 이걸 상을 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제 뭐 먹고 살아야하나.”
유명 작곡가 김형석이 최근 SNS에 남긴 글이다. 이미 음악시장에서는 AI가 만든 콘텐츠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당초 AI는 인간의 창의성과 감성까지 구현하거나 대체하기 힘들다는 전문가들의 주장까지 무너지고 있는 모양새다.
심지어 지난해 자신의 곡을 AI로 편곡하는 공모전을 개최한 김형석조차도 “AI 기술이 아직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완벽하게 재현하진 못하니 기술의 도움을 받아 창작물을 완성한다는 취지”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김형석의 발언은 작곡가를 비롯한 창작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발언이었다. 실제로 같은 조건에서 공모전을 진행했고, 김형석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상당한 수작’이라고 호평한 1등 곡이 AI 프로그램이 간단히 만들어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AI 기술은 사람의 작곡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것이다.
해당 공모전 외에도 이미 AI는 음악계에 깊숙이 파고든 상태다. 최근 유행한 가수 비비의 ‘밤양갱’ 커버곡 열풍 역시 AI의 영향이 컸다.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장기하를 비롯해 아이유, 양희은, 잔나비, 조혜련 등 딥러닝 기능을 이용한 AI 커버 버전은 유튜브에서 수십에서 수백 만에 이르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지난 6일 방송된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한 조혜련 역시 AI 조혜련 버전 ‘밤양갱’의 인기를 언급하면서 “AI만 이렇게 먹고 살면 나는 어떻게 먹고 사냐”고 하소연했다. 가수 장윤정도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박명수 AI 버전의 ‘밤양갱’을 본 이후 “이건 좀 심각하다. 소름돋는다”며 “이러면 가수가 레코딩을 왜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네티즌에겐 하나의 놀이문화로 정착된 AI 커버곡 생산이 실제 뮤지션에겐 단순한 놀이로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AI와의 상생, 공존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고 하지만, 단순 놀이문화를 넘어서 상업적으로 악용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법적인 제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아직 법적으로 이를 제지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현행 저작권법상 권리 주체는 인간뿐이다. 지난 2022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크리에이티브마인드의 AI 이봄의 작업물 ‘사랑은 24시간’을 등록했다가 저작권료 지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AI와 협업물에서는 인간의 지분이 인정되고 있지만 이조차도 전적으로 인간의 설명에 기반한 것이라 검증할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AI의 오남용을 막고 창작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선제적·예방적 입법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해 AI 생성 콘텐츠라는 사실을 표기하도록 하는 콘텐츠산업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문체부는 “올해 AI와 관련한 워킹 그룹을 운영해 AI 학습에 활용된 저작권에 대한 보호 및 배상, AI 생성물에 대한 표기 방법, 저작권 등록 시 AI 생성물에 대한 판단 요건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