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기 中 국채금리, 사상 처음 日 국채금리보다 낮아져
장기 국채금리 하락, 중장기 경기둔화 가능성 상징하는 지표
中 경제상황, 日 ‘잃어버린 30년’시기에 볼 수 있었던 사이클
부동산 해법 보이지 않고 美·中 지정학적 갈등 등 난제 쌓여
중국 장기 국채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일본 장기 국채금리보다 낮아지는 등 가파른 하락세를 타고 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같은 심각한 디플레이션(디플레·물가하락)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에 투자자들이 ‘돈을 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 국채금리가 2018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지난달 28일 중국의 30년 만기 국채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30년 만기 국채금리를 밑돈 데 이어 2일에는 연 2.17%까지 떨어졌고, 중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이날 연 1.9995%를 기록하며 2%대마저 속절없이 무너졌다고 미국 블룸버그통신 등이 보도했다.
장기 국채금리의 추락은 중장기 경기둔화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일본보다 경제성장 단계가 한참 낮은 중국의 장기 국채금리가 일본 장기 국채금리 수준 이하로 곤두박질친 것은 그만큼 앞으로 경제성장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시장 일각에선 중국의 디플레가 이미 고착화한 만큼 중국 당국의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분기까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5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는 1999년 이후 최장기간 지속이다.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눠 계산하는 GDP 디플레이터는 인플레이션(인플레·물가상승)과 디플레를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 디플레이터가 하락한다는 것은 물가가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0.3% 올라 9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근원 CPI(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 제외) 상승률은 0.2%에 불과했다. 제로(0)에 가까운 인플레가 지속된다는 것은 중국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경기부양책에도 내수가 침체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 국채금리의 하락은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가라앉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인민은행이 기준금리를 끌어내리고 있는 게 주요인이다. 중국은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고 내수부진이 심화하자 올해 들어 사실상의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7월과 10월 잇따라 끌어내렸다. 지난해 세 차례 예금금리를 낮춘 중국 은행들은 올해 7월에도 예금상품의 금리를 낮췄다. 정기예금 3·5년 만기 금리는 연 1%대 후반으로 낮아졌고 국채금리 인하도 가속화했다.
이에 따라 30년 만기 중국 국채금리는 2018년 1월 연 4.3970%에서 간단없이 추락해 현재 2%대를 위협받고 있다. 토미 셰 싱가포르 화교은행(OCBC) 아시아 거시경제팀장은 “중국 국채금리 급락세는 여전히 취약한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 탓에 은행 지급준비율(지준율) 인하 등 유동성 지원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와중에 중국 시장 투자자들이 주식과 부동산 등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인 채권으로 이동하고 있는 흐름도 국채금리 하락에 한몫하고 있다. 반면 일본 경제가 디플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오랜 기간 1%를 밑돌던 30년 만기 일본 국채금리는 2022년 초반부터 상승세를 탔다.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변경하고 통화정책을 정상화한 까닭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 정부는 하반기 들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쏟아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내리는 빅컷을 단행한 것이 그 계기다. 지난 9월 말 이후 ▲지준율(RRR) 0.5%P 인하 ▲장기 유동성 1조 위안(약 195조원) 공급 ▲정책 금리·부동산 대출금리 인하 ▲증시 안정화 자금 투입 ▲지방정부 부채 해결 위해 앞으로 5년간 10조 위안(약 1953조원) 지원 등 경기부양 대책을 연달아 내놨다.
인민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추고 대출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돈을 풀고,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이 돈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와 함께 시중은행을 통해 주식을 직접 사들이도록 유도하는 이른바 ‘특융’방식의 대책도 선보였다.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마지노선인 5%가 위협 받게 된 것이 부양책을 내놓게 된 ‘실질적인’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일본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1990년대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 30년 만기 국채금리가 가파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점이 저물가·저금리·성장잠재력 둔화로 대표되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 배경이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때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엔화를 대폭 절상했고 ‘미·일 반도체협정’ 등을 통해 미국의 경제제재를 당했다. 이 때문에 경기침체가 심해지자 일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돈을 대거 풀었다. 그렇지만 돈 풀기는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일본은 1990년 이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중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막대한 돈을 풀어 경기를 띄우려는 것도 과거 일본을 닮았다. 9월말 각종 정책을 총동원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방침이 정해지자 중국의 재정부·국가발전개혁위원회 등 중앙정부, 인민은행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시장에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고 있다. 정책 효과가 가시화되지 않으면 추가적인 돈 풀기도 나설 태세다.
중국은 통화 재정정책 집행과정에서의 효율성은 어느 나라보다 높지만, 정책의 결과가 성공적일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 가 우세하다. 일본이 돈 풀기로 장기불황을 막지 못했듯이 중국의 막무가내식 ‘돈 풀기’ 정책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돈을 푸는 것은 몸이 약해진 사람에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시적으로 회복되겠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몸은 더 약해진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재정·통화정책은 경기침체기의 진폭과 기간을 줄일 수는 있지만 펀더멘털을 강화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곧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돈을 풀어 경기를 띄우면 인플레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만큼 그 다음에는 더 센 정책을 내놔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일본의 경우 금리를 마이너스까지 떨어뜨리고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도’ 실물 경제가 되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면서 30년 동안 경기침체에 시달렸다. 중국의 현 경제상황에 대해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수십 년’ 시기에 볼 수 있었던 사이클”이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중국의 경제 침체는 무엇보다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중국 경제에서 부동산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0%가 넘는 만큼 이를 해결하지 않고 경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중국 부동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코로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당국이 부동산 시장을 옥죄면서다.
질주하던 중국경제 흐름을 타고 호황을 누리던 부동산 업계는 코로나19라는 직격탄를 맞았다. 이전부터 시나브로 쌓인 불황의 조짐이 본격화하면서 부실이 드러난 것인데, 중국 내 대형 부동산 업체들조차 자금난에 시달리며 분양한 아파트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다.
중국은 그동안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적극적인 자금지원을 통해 시장안정화를 꾀하곤 했지만 당시엔 달랐다. 오히려 시장 정화의 기회로 삼아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문제해결을 하게 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무색할 정도로 헝다(恒大)그룹 등 주요 부동산 업체들은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더욱이 부동산 시장 침체에 대한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 당국이 자금난에 빠진 업체들을 돕기 위해 1조 7700억 위안(약 346조원)을 추가로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시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여기에다 미·중의 지정학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중국경제 부진에 일조하고 있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관세 부가 조치 등 미국의 견제는 중국 정보기술(IT)기업들의 경쟁력을 자꾸 약화시키는 분위기마저 역력하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