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 대통령, 자동차 관세 부과 예고
"보조금·환율·규제·인증 등 모든 부분 고려"
韓 전기차 인증, 미국 대비 30% 이상 낮게 산출
고환율로 떼돈 번 현대차·기아·한국GM '집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분야에 대한 상호관세를 예고하면서 국내 자동차업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국이 피해를 입는 만큼 상대국에도 똑같이 관세로 되갚아 주는 '눈눈이이(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 정책을 펴겠다는 건데, 그간 고환율과 수출량으로 수익을 높여온 국내 자동차 업계가 집중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한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역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대비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온 탓에 그간 국내 인증 주행거리가 미국 인증 대비 30% 가량 낮게 인증돼왔고, 국내에서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보조금과 직결돼 수입 전기차에 불리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응이 어느때보다도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각국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두루 고려해 '상호 관세'를 세계 각국에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백악관은 상호 관세 여부를 국가별로 차등해 적용할 것이며, 오는 4월 1일까지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핵심은 '비관세 장벽'이다. 상호관세는 미국 상품에 적용하는 관세율만큼 상대국 상품에도 관세를 부과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개념이다. '관세'만 생각했을 때 한국은 미국은 FTA를 통해 상호간 0%의 관세를 매겨온 만큼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미국 업체들이 한국에서 손해보는 구조적 문제 등 비관세 장벽까지 고려한다면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미 교역상대국들)은 우리에게 세금이나 관세를 물린다. 우리도 그렇게 하겠다"며 "우리는 (기울어지지 않은) 평평한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최근 철강 분야에 대한 관세를 발표한 데 이어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인증과 같은 세금 이외 무역장벽도 대응하겠다"며 유럽을 겨냥해서는 "상호관세를 부과할 때 부가가치세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백악관 고위당국자도 이날 "중요한 점은 중국 공산당 같은 전략적 경쟁자든 유럽연합(EU)이나 일본, 한국과 같은 동맹이든 상관없이 모든 나라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이에 따라 한국 자동차 업계는 곧 발표될 자동차 관련 상호관세 정책에서 화살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FTA를 통해 미국으로 관세없이 완성차를 수출하며 큰 수익을 얻어온 데다, 최근 수년간 고환율 기조가 지속되면서 수혜를 입은 대표적 산업군으로 꼽힌다.
미국 CNBC방송이 글로벌데이터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차량 가운데 국가별 수입 비중을 보면 멕시코(16.2%)에 이어 한국(8.6%)이 2위를 차지했다. 이어 일본(8.2%)·캐나다(7.2%) 순으로 나타났다. 미국산 비중은 53.4%였다.
특히 한국산 비중은 2019년 5%(약 84만5000대)에서 지난해 8.6%(약 137만대)로 늘어났다. 제조사별로 보면 현대차가 2019년 34만4000여대에서 지난해 62만90000여대로 크게 늘었고, GM은 17만3000여대에서 40만7000여대로, 기아는 24만4000여대에서 33만5000여대로 증가했다.
비관세 장벽 대상 중 하나인 '자동차 인증' 역시도 한국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미국의 주행거리 인증 시스템인 EPA 대비 환경부에서 더욱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 인증 시스템도 EPA를 기반으로 하지만, 저온 주행 항목에서 더 가혹한 조건으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같은 배터리를 적용한 같은 모델이라 하더라도 미국 인증거리와 비교하면 한국에서 약 5~10% 가량 낮게 인증된다. 일례로 58 kWh 배터리를 장착한 현대 아이오닉 5 RWD 스탠다드 모델 기준 EPA 주행거리는 복합 354km인 반면, 환경부 기준으로는 336km에 불과하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환경부가 인증한 1회 충전 주행거리를 기준으로 전기차 보조금을 차등 지급한다는 점이다. 국내 인증 시스템에 맞춰 전기차를 개발하는 한국 업체들과 달리 미국, 유럽 브랜드들은 각국의 주행거리 인증을 기준으로 개발한다. 주행거리 인증 기준이 엄격한 한국으로 전기차를 들여왔을 때 인증 수치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고, 전기차 보조금에서도 불리한 구조다.
보조금, 환율, 인증 등 비관세 장벽을 들어 한국 자동차에 대해 상호관세를 매길 경우 국내 업체는 물론 한국의 수출량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생산을 최대치로 늘리고, 한국에서의 수출량이 자연스레 줄어들 수 밖에 없어서다. 수출량을 유지하면 미국에서 차량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대중 브랜드인 현대차·기아의 경우 가격 인상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의 대미 수출을 이끄는 일등 공신은 단연 자동차다. 지난해 기준 자동차 대미 수출액은 전년 대비 8% 증가한 342억달러로, 전체 대미 수출의 26.8%를 차지했다. 자동차는 지난해 한국 전체 대미 흑자의 약 60%를 차지했다.
미국을 최대 시장으로 두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경우 미국 생산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고 하더라도 손실이 불가피하다. KB증권은 한국산 자동차에 EU와 비슷한 수준으로 10%의 관세를 매긴다고 가정했을 때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은 각각 1조9000억원, 2조4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신용평가사 S&P 글로벌은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관세 20% 부과 시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이 최대 19%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 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큰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강력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원 예산을 모두에게 공정하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협력사들의 피해액을 면밀히 조사해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이항구 아인스(AINs) 연구위원(전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정부가 피해액을 보전해줘야한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한다. 그사이 기업들은 로비도하고, 원가를 절감하고, 공급망을 다변화 해야한다"며 "과거에도 그래왔고, 이미 다른 국가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자동차 업체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공평하게 쥐어줘선 안된다. 대기업의 피해액과 협력 업체, 부품업체들이 입을 피해액이 다르고, 단순 액수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이 오갈 수 있는 문제"라며 "대기업은 살아남지만, 국내 부품업계는 도산할 수 있는 문제다. 정확한 문제를 짚어 필요한 만큼 지원해주는 '핀셋 정책'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