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법 처리하자" 개편 추진 의사
주 52시간, 전국민 25만원 오락가락 행보
산토끼 잡다 집토끼 잡는 '재선회' 번복
우클릭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음 주라도 시행할 수 있다"며 상속세 개편 문제를 띄웠다. 그러나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제 예외'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등 조기 대선과 집토끼 표심을 염두한 '이재명표 경제정책 좌·우클릭'이 혼재됨에 따라 이번에도 이 대표의 말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1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주말휴일을 뜨겁게 달궜던 상속세 관련 발언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배우자 공제와 기초 공제 각 5억씩 10억까지 면세 기준이 28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그 후 지금까지 물가도 집값도 올랐는데 기준이 그대로 유지되니까 아무것도 늘어난 것은 없고 세금만 늘었다"고 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상속세 공제 현실화를 위한 정책토론회' 서면 축사에서 "상승한 주택 가격과 변한 상황에 맞춰 상속세를 현실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며 "합리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주말인 15일, 페이스북을 통해선 "민주당은 일괄 공제 5억원, 배우자 공제 5억원을 각 8억원, 10억원으로 증액. (이 경우) 18억원까지 면세. 수도권의 대다수 중산층이 집을 팔지 않고 상속 가능하다"라고 써 상속세 개편 추진 의사를 드러냈다.
또 다른 게시물에서는 "상속세 공제 한도 상향은 국민의힘이 '초고액자산가 상속세율 인하(50%→40%)를 주장하며 개정을 막아 못하고 있다"며 "국민의힘이 동의하면 다음 주에라도 즉시 개정해 곧바로 시행할 수 있다"고 했다.
여권에선 "양치기 소년의 말로는 국민이 잘 안다"며 이 대표의 개편 의지가 거짓이라고 받아쳤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날 오전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경제는 이재명'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은지 묻고 싶다"라며 "바로 며칠 전 반도체 산업 근로 시간과 관련해서 말을 바꾸고, 추경에서 전 국민 현금 살포를 뺐다 넣었다 쇼를 벌인 장본인이 바로 이재명 대표"라고 직격했다.
그는 "'경제는 이재명'이 아니라 '말 바꾸기는 이재명'이 맞는 표현"이라며 "상속세 개편과 관련한 이재명 대표의 가벼운 언사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 특유의 무책임 정치가 이번에도 드러났다"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우클릭' 하는 척만 하면 되니 일단 던지고 보자는 식"이라며 "주택 상속 때 발생하는 세금 조금 깎아주면 문제가 해결되느냐"라고도 따져 물었다.
조국혁신당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김선민 혁신당 대표권한대행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속세는 중산층 세금이 아니다. 서민은 내고 싶어도 못 낸다"며 "2025년 1월11일 서울부동산광장정보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평균 거래 금액은 9억9544만원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이어 "2023년 기준 전체 피상속인 29만2545명 가운데 상속세를 내는 이들은 1만9944명으로 6.6%에 불과하다"며 "감세의 결과는 중산층과 서민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반도체특별법 토론회에서 "총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면,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정도의 유연성을 부여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주 52시간제 예외'를 적용하는 근로 시간 유연화에 대해 입장 변화를 보였다.
하지만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산업 국가 지원 법안을 먼저 처리하자"고 한 뒤 관련 논의는 중단됐고, 지난 17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에서도 민주당은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신설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추경 편성에 꼭 필요하다면 특정 항목을 굳이 고집하지 않겠다"며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철회 의사를 밝혔지만, 지난 13일 당 정책위가 공개한 3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에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라는 이름으로 1인당 25만원씩 지급하는 지역화폐가 포함됐다.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선 "지금은 경제적 안정과 회복, 성장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며 기본사회 공약 재검토를 시사했지만, 지난 1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초과학기술 신문명이 불러올 사회적 위기를 보편적 기본사회로 대비해야 된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이와 관련 이 대표의 실용주의·중도 노선이 자충수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당내 경쟁자가 유일무이한 상황에서도 여론조사에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지지율 박스권에 묶여있다.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을 한데 묶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높은 비호감도 등으로 인해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상속세, 주52시간제, 민생회복지원금, 기본사회' 등의 의제에서 이 대표가 우클릭을 이어가는 배경엔 외연 확장을 통해 중도층 표심을 끌어오겠다는 전략이 깔린 것으로 읽히는데, 문제는 같은 맥락에서 상속세 개편 의지도 전통 지지층 반발과 지지율 등락에 따라 방향 재전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도 이 대표의 재선회가 이어지는 배경에 당내 지지층 결집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당내 경쟁자가 전무한 상황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전통적 지지층을 못 잡는 상황에서 조기 대선을 염두한 급한 '우클릭'이 이뤄지다 보니 내부 반발에 따른 '재선회'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상속세도 우리나라 큰 세제 개편에 대한 틀에서의 한 방편인데, 기초 공사가 안 된 상태에서 주객이 전도됐다"며 "많은 사람이 이 대표의 말에 앞뒤가 안 맞는 '모순'을 느끼면서 또다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