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100호 건조에 21년 걸렸으나
단 9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
초격차 기술로 일군 수확체증 혁신
5년 후 300호 달성도 가능할까
‘차가운 머리, 따뜻한 가슴(Cool head and warm heart)’을 역설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은 원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 영국이 세계 최고 부국이었음에도 런던에 빈민들이 넘치는 역설적 현실을 보고 경제원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마셜의 안목은 탁월했다. 한계효용체감, 한계생산성체감의 원리에 기반해 수요공급 곡선을 고안했고, 탄력성 개념을 통해 복잡한 시장 움직임을 명징하게 풀어냈다. 그의 수학 기반 이론들은 오늘날 경제원론 교과서의 토대가 됐지만, 경제학을 배우는 후학들의 머리를 아주 뜨겁게 만들어놓았다.
한계이론(Marginal theory)이란 한 단위의 요소가 추가로 투입될 때 효용이나 생산성이 점점 줄어든다는 논리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음료수 한 병을 마시면 효과 만점이지만 한 병씩 더 마시면 만족감은 계속 작아진다. 제조자 입장에서도 생산요소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투입하면 비용부담만 커지고 단위당 생산량은 감소한다.
소비자 수요와 생산자 공급의 최적화를 통해 시장균형을 보여주는 한계이론은 곧 미시경제학의 ‘법칙’이 됐다. 규모의 경제에 도달한 기업에 획기적 생산성 향상을 추가로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도 명확해졌다. 산업혁명이 일으켜놓은 대부분의 제조업에서 한계이론은 바이블(Bible)이나 다름없었다.
한화오션이 최근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200호’를 달성한 것은 무엄하게도 그 마셜의 법칙에 도전장을 내민 기록이다. 1995년 첫 LNG선 건조 이후 2016년 100호를 달성하기까지는 21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후 9년 만에 100척을 추가로 만들어냈다. 건조 기간을 2배 이상 단축한 것은 물론 부가가치도 훨씬 높아졌다.
물론 마셜의 법칙은 생산요소의 투입-산출 관계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요인들이 일정하다(ceteris paribus)’라는 가정을 사용한다. 글로벌 수요변동이나 기술 진보 같은 외부 변수 영향은 다른 차원의 분석이 필요하단 얘기다. 그렇다고 해도 전통 제조업에서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수확체증 현상은 여전히 마셜을 놀라게 할 만하다. 반도체산업 성장기에 유행하던 ‘무어의 법칙’이나 ‘황의 법칙’을 닮은 패턴이기 때문이다.
중후장대 산업의 종결자인 조선업 특성을 살펴보면 그 의미는 더 선명해진다. 선박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장 거대한 제품이고 경기순환 주기도 매우 길다. 단기간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IT 업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기에 값싼 노동력과 국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의 물량 공세로 K-조선의 입지가 위협받아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고가선박의 상징인 LNG선은 중국의 핵심표적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도 획기적인 속도로 세계 최초 200호를 달성한 기록에는 어떤 마법이 숨어있을까. 답은 역시 초격차 기술력이다. 한화오션이 이번에 SK해운에 인도한 ‘레브레사’호도 저압 이중연료추진엔진(ME-GA)과 재액화 설비를 탑재해 대기오염 물질 배출을 대폭 줄인 친환경 선박이다. 스마트십 솔루션(HS4)으로 불리는 최신기술을 적용해 선박 운영 효율도 극대화했다,
LNG운반선은 사실 그 자체로 고난도 기술 집약체다. LNG는 천연가스를 -163℃ 극저온에서 600분의 1로 압축시켜놓은 것이다. 이 위험한 액체는 험한 바닷길을 다니는 동안 화물창의 벽을 들이받으며 요동친다. 그걸 견뎌내려면 특수재질의 탱커는 물론이고 슬로싱(sloshing) 연구를 통해 장기 축적된 빅 데이터 과학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운송과정에서 기화하는 LNG를 다시 액체로 되돌리거나 운반선 연료로 써먹을 기술이 없으면 속절없이 허공에 날려야 한다. LNG의 탄소 배출량은 석탄보다 45%가 적지만 무(無)탄소로 가는 중간단계일 뿐이다. 따라서 LNG운반선도 재액화 설비나 이중연료 엔진 정도는 갖춰야 비로소 저탄소 또는 친환경 선박이라 부를만하다.
한화오션의 초격차 경쟁력은 이런 탄탄한 기초 위에 첨단 신기술이 접목되면서 나온다. 빙하를 뚫고 다니는 쇄빙 LNG운반선을 비롯해 LNG 재기화 선박, 부유식 저장 및 환적 설비 등 LNG 분야의 풀라인업을 구축해놓은 상태다. 옥포조선소엔 LNG선 4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는 제1도크를 비롯해 연간 최대 25척의 생산능력도 갖추고 있다.
미국 트럼프행정부가 화석연료 정책 방향을 전환하면서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독보적 기술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화오션의 LNG선 역사엔 여러 종류의 세계 신기록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어느 누구도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미래를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은 끊임없는 혁신이다. 혁신의 동력은 상상력과 도전정신이다. ‘LNG선 300호 기록’은 5년 만에 달성해 잠자는 마셜을 또 한 번 놀라게 한다면 어떨까. 생전의 마셜이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바로 그런 냉철한 상상력과 뜨거운 도전정신이 아닐까 싶다. ‘차가운 머리, 그리고 따뜻한 가슴’ 말이다.
글/ 이동주 한화오션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