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 전영오픈 결승서 극적인 역전승
몸 상태 좋지 않아 패색 짙을 때 괴력 떨치며 흐름 뒤바꿔
안세영 "내 자신을 믿고 했다"..상대한 왕즈이도 감탄
‘세계랭킹 1위’ 안세영(23·삼성생명)이 통증과 독감이라는 최악의 상태에서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안세영은 17일(한국시각) 영국 버밍엄에서 펼쳐진 ‘2025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전영오픈’ 여자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왕즈이(24·중국)에 게임 스코어 2-1(13-21 21-18 21-18) 승리했다. 20연승.
4강에서 야마구치 아카네(일본·3위)를 완파하고 지난해 결승 무대서 당한 패배를 설욕한 안세영은 이번 대회서는 결승 무대에서 왕즈이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정상 탈환에 성공했다.
전영오픈은 1899년에 출범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배드민턴 대회다. 최근에는 상금도 크게 늘어 우승자에게는 9만1000 달러(1억1945만원)가 지급된다. 안세영은 2년 전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방수현(1996년) 이후 27년 만에 정상에 등극했다.
전영오픈마저 우승으로 장식한 안세영은 올해 치른 4개 대회를 휩쓸며 ‘여제’의 행보를 이어갔다.
체력적 우위와 노련한 플레이, 감동적인 투혼으로 일군 우승이다.
안세영은 4강에서 오른 허벅지 뒤쪽을 만지며 통증을 호소했다. 승리 후에도 불편한 표정으로 코트에 주저앉았다. 팬들의 응원을 업고 다시 일어나 우렁차게 포효했지만 몸 상태에 대한 걱정은 지우지 못했다.
우려대로 여파는 컸다. 결승 초반부터 긴 랠리를 이어가던 안세영은 평소의 스텝이나 리듬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유의 탄탄한 수비는 여전했지만, 공격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왕즈이는 라인에 걸치는 행운까지 누리며 리드를 잡았다. 챌린지도 왕즈이 포인트를 막지 못했다. 흐름을 빼앗긴 안세영는 벌어진 점수 차를 좁히지 못하고 1게임을 빼앗겼다.
2게임에서 왕즈이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안세영에게 기회가 왔지만 살리지 못했다. 아쉬운 공격으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근소한 리드도 빼앗겼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듯 불편한 표정으로 왼 무릎을 자주 만졌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19연승을 달리던 전날의 안세영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대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질 때, 안세영은 놀랍게 살아났다. 왕즈이의 좌우로 찌르는 공격을 모두 받아내며 19-18 역전에 성공한 뒤 먼저 20점 고지를 밟았다. 왕즈이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던 중국 팬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결국 안세영은 38분 만에 2게임을 따냈다.
3게임에서도 몇 차례 위기에 몰렸지만, 그때마다 안세영은 주저앉지 않고 일어났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강약을 조절하며 지능적인 플레이로 상대의 범실을 유도해 포인트를 쌓은 뒤 매치 포인트를 따낸 뒤에야 주저앉았다. 승리를 확정한 뒤 절뚝거리며 코치진과 얼싸안았고, 응원했던 팬들을 바라보며 우렁차게 포효하며 기쁨을 나눴다.
안세영은 우승을 확정한 후 왕관을 머리에 쓰는 듯한 행동으로 눈길을 사로잡으며 “이제 내가 여왕이다”(I’m a queen now)“라고 말했다. 안세영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너질 듯한 상황에서 갑자기 괴력을 뿜은 상황에 대해 “나 자신을 믿었다. 경기에만 집중하자고 되뇌었다. 그러면서 힘이 올라왔고, 좋은 결과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BWF에 따르면, 안세영은 독감까지 걸려 평소보다 컨디션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포기하지 않고 집중력을 잃지 않은 안세영 플레이를 지켜본 왕즈이도 혀를 내둘렀다. 안세영은 BWF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경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지난해 안타까운 결말(준우승)을 떠올렸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며 괴력의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말 안세영을 두 번이나 잡는 놀라운 결과를 만든 왕즈이는 올해 두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졌다. 이날은 1게임을 먼저 따낸 뒤 역전패를 허용해 더 뼈아팠다. 경기 후 왕즈이는 “안세영과 마찬가지로 나도 수준 높은 경기를 했지만 세밀한 부분에서 뒤졌다. 안세영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이번 경기를 잊지 않으면서 다음 대회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