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LX 700h 오프로드+온로드 시승기
보장된 편안함, 깊어진 안전성… "비싼 몸이야"
오프로드 新 강자 등판… 능구렁이 같은 끈적함
'렉서스'와 '오프로드'는 한국에서 공존하기 어려운 단어다. 편안함과 럭셔리함의 대명사, 고장없이 오래 탈 수 있다는 인식은 충분하지만, 그런 렉서스를 끌고 강을 건너거나 험한 바윗길을 오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편안함에 치우친 한국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렉서스는 그간 한국에서 팔지 않던 새로운 얼굴, LX500h로 반전을 꾀하고 나섰다. 자꾸만 큰 차를 원하는 국내 시장에 걸맞는 거대한 몸집과 이미 증명된 하이브리드 기술, 어디서든 지켜줄 것 같은 오프로드 성능이 결합된, 그야말로 '괴물'의 등장이다.
그래서 직접 시승해봤다. 고속주행을 기반으로 한 온로드(일반 도로)는 물론 험난한 총 8가지 오프로드 코스까지 다양하게 경험해봤다. 시승 모델은 렉서스 LX500h VIP트림으로, 가격은 1억9457만원이다.
'화 좀 풀어..' 보자마자 압도되는 얼굴에 사과라도 할 뻔 했다. 분명히 세단에서도 익히 보던 얼굴인데, 크기를 집채 만하게 늘려놓으니 인상이 사나워졌다. 강인하게 디자인했다는 수많은 대형 SUV를 봐왔건만 잔뜩 화가 난 인상부터 단단하게 펌핑된 근육까지, 화를 풀어줘야할 것 같은 기분은 또 처음이다.
강력한 똥고집으로 똘똘 뭉친 인상은 전면의 대형 스핀들 프레임리스 그릴이 주범이다. 렉서스의 모든 차량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그릴임에도 불구하고, LX700h에서는 사방으로 커지면서 입체적으로 강력하게 변했다. 앞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렉서스인 걸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기존 SUV 모델인 RX, NX와 비교해도 LX가 유독 고집불통같은 느낌인데, 헤드램프의 크기와 날렵한 선을 절제한 탓인 듯 하다. RX, NX의 경우 전면을 입체적으로 디자인해 그릴에서 헤드램프로 한번 꺾이는 형태였다면, LX는 평평하게 이어진다. 자잘한 선으로 날렵함을 강조하기 보다는 전면을 부피감 있게 디자인 하면서 꽉 막힌, 무게감 있는 얼굴이 만들어졌다.
얼굴에서부터 숨길 생각이 조금도 없는 우락부락함은 옆면으로 돌아서면 더 잘 드러난다. 전면에서부터 후면까지 두껍고 수평적인 몸매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캐릭터라인도 번잡스럽거나 화려하지 않다. 두툼하고 단단한 몸집이 정직한 대형 SUV의 표본을 보는 듯 하다.
후면 역시도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정제돼있다. 렉서스 SUV의 패밀리룩인 일자형 리어 램프와 중앙의 렉서스 배지가 사실상 전부다. 일자형 램프 아래 양쪽에 위치한 리어램프도 사선의 형태를 띠곤 있지만 큰 꾸밈 없이 제 기능을 위해 탑재됐을 뿐이다. 2억에 육박하는 몸값을 드러내고 싶을 법도 한데 조금의 허세도 없다.
정직하다 못해 우직함마저 느껴지는 디자인은 내부로 들어서도 그대로다. 중앙에 2단으로 위치한 디스플레이와 최고급 가죽을 쓴 시트 정도를 제외하면 '우와~' 싶은 특별함은 사실상 없다. 상단의 디스플레이는 12.3인치, 아래 위치한 디스플레이는 7인치인데, 특히 7인치 디스플레이 양쪽에 마련된 송풍구는 약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살짝 올드한 느낌마저 낸다. 요즘 웬만한 차에 다 들어간다는 앰비언트 라이트도 찾아볼 수 없다.
2억에 육박하는 렉서스의 기함임에도 내부 디자인에서 오는 고급감은 사실 다른 모델들과 비슷한 수준인데, 오히려 어떤 차를 타더라도 렉서스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이 동일하게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비싸진 가격만큼 특별한 실내를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울수 있겠다.
디자인을 둘러보고 난 후 가격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면 최대한 빨리 도로로 나가볼 것을 권한다.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부터는 그간 렉서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신세계'가 펼쳐졌다. 같은 SUV 형제면서 LX, NX와 디자인에서부터 묘한 차이를 둔 이유 역시도 운전석에 앉으면 단번에 이해된다.
RX는 그간 국내 시장에 들여온 모든 렉서스 차종 중 유일한 프레임 바디 모델이다. 바닥과 차체를 일체형으로 만드는 모노코크의 장점인 연비와 승차감을 포기하고, 굳이 차체 강성을 높이는 걸 선택했다는 뜻이다. 모노코크 바디에 얼굴만 험악하게 생긴 동급 대형 SUV 모델들과는 '비교도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무게 좀 쳐본 RX는 태생이 오프로더였다. 사람이 직접 걷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험난한 오프로드 코스들을 거뜬히 주파해낸다. 허벅지까지 수위가 높아진 강을 건너도, 바닥이 쩍쩍 달라붙는 진흙길에서도, 디딜 곳 마저 충분치 않은 통나무 다리 위에서도 '집에는 돌아가게 해줄게'라고 말하는 듯 했다.
RX 안에서의 오프로드 주행이 특별한 건 '끈적함'이다. 느끼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길에서 아주 끈적하고 쫀쫀하게 바퀴를 굴린다. 디딜 면적이 아주 적더라도 바퀴에 닿는 모든 면을 정성스럽게 밟고, 다음 면을 찾을 때까지 감싸안는 느낌이다.
특히 커다란 바위가 제멋대로 배열된 '락(Rock)' 구간을 지날 때 끈적하고 쫀득한 맛이 극대화됐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거대한 돌덩이를 보자마자 사정없이 흔들릴 각오를 하고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정작 RX는 클래식 음악이라도 틀어놓은 듯 여유롭고 우아하게 바위에 올랐다.
국내 대표 오프로더로 이름을 날린 지프 랭글러, 벤츠 G클래스가 '이정도 쯤이야'라고 외치며 시크하고 퉁명스럽게 지면을 튕겨낸다면, RX는 모든 지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감싸 안고 '살짝 지나갈게~'를 속삭이는 듯 하다. 차를 위협하는 바위마저 끌어안은 RX에 올라 탄 운전자와 동승객이 편안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2개로 나뉜 중앙 디스플레이는 오프로드 시 손 뻗으면 언제든 닿을 거리에서 운전자를 대기하는 비서로 변한다. 위아래로 배치된 전면 디스플레이에서 상단의 화면은 오프로드 시 전·후·측면의 카메라를 비출 수 있고, 하단의 화면은 오프로드 전용 모드를 변경할 떄 이용된다.
특히 바닥면을 비추는 언더 플로어 뷰는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기능으로, 운전자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요소다. 주행 중 직전에 촬영된 영상을 합성해 차량 바닥 아래가 투과된 것처럼 보여주는데, 덕분에 운전자는 뒷바퀴 주변의 상태를 확인하고 장애물까지의 거리를 예측할 수 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차량이 고착됐거나,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려고 할 때 매우 유용하다.
지면 상태를 스스로 추측해 적합한 모드로 구동 비율을 변경하고, 알아서 달려내기까지하는 '크롤' 기능은 왜 렉서스가 럭셔리 브랜드인지 증명한다. 쉽게 말하면 오프로드 크루즈컨트롤인 셈인데, 지면 상태가 예측되지 않는 곳에서도 스티어링휠만 잡아주면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장애물을 헤쳐나간다. 경사로에선 브레이크를 잡지 않아도 알아서 속력을 줄이고, 통나무 위에선 구렁이 담 넘듯 능글맞게 주파해낸다.
온로드에서의 주행감은 어떨까. 물론 RX의 진가는 '럭셔리한 오프로드'에 있지만, 일반도로에서도 프레임 바디 치고 매우 훌륭한 수준을 보여준다. 소음은 두꺼운 유리를 통해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차단했고, 온 몸으로 노면이 전해질 줄 알았던 승차감도 기대 이상으로 걸러졌다.
연비의 한계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잡았다. LX에는 병렬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탑재돼있는데, LX를 위해 최초로 개발된 파워트레인이라고 한다. 3.5L V6 트윈 터보 엔진과 10단 자동 변속기 사이에 모터 제너레이터(MG)와 클러치를 통합한 구조로, 퇴대 토크는 66.3kg.m, 총 출력은 464ps다.
이렇게 탄생한 LX의 정부 공인 복합연비는 8.9km/L다. 요즘 시대에 한자릿수 연비를 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프레임 바디 기반의 럭셔리 오프로더를 전제로 만들어졌단 사실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승차감과 연비 모두 그간 렉서스가 가장 잘해오던 분야이긴 하지만, 기존 모노코크 차량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려운 수준이니 프레임 바디임을 꼭 염두에 두고 시승하는 게 좋겠다.
2억에 육박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시승을 마치고 나니 '우리 가족 패밀리카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솟구쳤다. G클래스부터 레인지로버 스포츠, GLS, X7 등 쟁쟁한 경쟁모델들이 있지만 '내 차'가 아니라 '가족 차'를 고른다고 생각하니 선택지가 자연스레 좁혀졌다.
예쁘고 화려한 디자인도 좋지만, 결국 가족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떤 길에서도 편하게 집까지 데려다 줄게'라고 말하는 렉서스의 브랜드 철학이 100% 반영된 모델이기 때문이 아닐까. 높은 가격에 주저하는 이들을 제치고 구매했을 때 얻는 희소성과 만족감은 덤이다.
▲타깃
-비올까, 눈올까, 침수될까… 온갖 걱정 시달리는 당신
-2억짜리 차 끌고 오프로드 나갈 용기 있다면
▲주의할 점
-대단한 오프로드 기능을 실제로 쓸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잔소리꾼들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가격은 함구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