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 개봉
황승재 감독의 신작 '귀신들'은 2021년 제8회 SF어워드 영상부문 대상 수상작 '구직자들'의 세계관을 확장한 작품이다. 황 감독의 전작 '구직자들'이 인간과 AI인간이 공존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일자리 경쟁이라는 구체적 문제를 통해 노동시장의 변화와 기술 발전이 인간 삶에 끼치는 영향을 탐색했다면, '귀신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AI가 과연 우리 미래에 희망이 될 지 혹은 욕망의 대상이 될 지에 되짚는다.
'귀신들'은 AI가 노동의 중심이 된 사회.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옴니버스 구조 안에서 다층적으로 전개된다. 죽은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AI의 범죄, AI를 반려동물처럼 쉽게 들이는 모습과 폐기된 AI가 도시를 떠도는 모습, 인간의 빚을 AI가 계속해서 갚아야 하는 비극, 죽음을 앞둔 인간이 자신의 기억을 AI에게 넘기며 삶을 대리 연장하는 기묘한 계약 등 이 모든 서사는 기술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인간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을 감정의 언어로 전달하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이요원, 강찬희, 정경호, 백수장, 오희준, 이주실, 김강현 등은 인간과 AI, 그 경계에 놓인 인물들을 연기하며 SF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도 과장되지 않은 얼굴과 몸짓으로 진정성을 불어넣는다.
강찬희와 김강현은 '썰', 정경호는 '구직자들' 황승재 감독의 전작에 출연한 바 있는 배우들로, 감독의 세계관 안에서 다시금 인간성과 윤리라는 질문을 짊어지고 돌아왔다. 전작을 통해 함께 구축해온 신뢰와 감정의 리듬이 이번 작품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서사에 안정감과 밀도를 더한다.
'귀신들'의 주목할 점은 이 모든 서사가 화려한 특수효과나 대규모 제작 시스템 없이, 상상력과 서사적 밀도로만 구축된다는 점이다. AI가 단순히 공포나 위협의 대상으로 등장하지 않고, 미래의 현실로 받아들여지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윤리적 고민의 주체로 배치된다. 이는 흔히 디스토피아로 묘사되는 SF 세계관에 인간적인 온도와 사회적 질문을 섞어낸다는 점에서,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현실의 은유처럼 읽힌다.
팬데믹 이후 사회가 경험한 비대면의 일상,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움직이는 서비스 노동의 확산, 죽음조차도 디지털화되는 현실 앞에서 이 영화가 제기하는 상상력은 결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귀신들'이 저예산 독립영화로서 시도한 세계관 확장의 방식이다. 시리즈화나 IP 유니버스 구축은 대개 대형 자본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황 감독은 제한된 예산과 불안정한 배급구조 속에서도 서사를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이는 단순히 전작의 성공을 반복하거나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이라는 틀 안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창작자의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황승재 감독의 '귀신들'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감정과 가치를 잃고 있는지를, 그리고 다시 어떤 이야기를 현재 해야 하는지 정면으로 묻는 동시에 유연하게 상상력으로 뻗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