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尹 탄핵 여부 불투명에
野 법사위 '재판관 임기 연장'
'권한대행 임명불가' 법안 강행
국민의힘 "명백한 위헌" 반발
더불어민주당이 퇴임을 앞둔 헌법재판관의 임기(6년)를 강제 연장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막는 입법을 강행하려는 것은 당초 예상과 달리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여부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거대 의석으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입법카드를 꺼내들어 윤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내는 것이 민주당에 당면한 지상 과제라는 관측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31일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은 헌법재판관의 임기를 연장'하는 내용(권향엽·이성윤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과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김용민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의 헌재법 개정안 두 건을 일괄 상정해 법사위 제1법안소위로 넘긴 뒤, 야당 주도로 강행 처리했다.
권향엽·이성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국회와 대법원이 선출하거나 지명한 재판관에 대해 대통령은 7일 이내에 임명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임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내용이다. 재판관 임기 만료나 정년이 된 이후에도 후임자가 임명되기 전까지는 직무를 수행하도록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 전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해 6인 체제가 되면 헌재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돼 탄핵심판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법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추천으로 임명된 두 사람이 오는 18일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재판관의 공석 사태를 막고, 임기를 연장해 탄핵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또 김용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 또는 직무정지 등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권한을 대행하는 경우, 국회에서 선출한 재판관 3명과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 3명을 제외하고는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법률에 명문으로 규정하도록 했다. 두 재판관의 후임 재판관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명하지 못하도록 해 윤 대통령 탄핵을 위한 우군 재판관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민주당발(發) 이번 헌재법 개정안 중 후임자 임명까지 재판관 임기를 연장하는 내용은 이미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1988년 헌재법 제정 이래 22대 국회 전까지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6차례 발의됐는데, 법사위는 이 가운데 5건에 대해 검토보고서를 내고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이 규정한 재판관 임기를 법률로 개정하면 헌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후임자가 올 때까지 재판관 임기를 늘리는 것은 임시 조치에 해당하기에 위헌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법사위 소위원장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소위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법안 자체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할 때까지도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선고되지 않는 경우, 그래서 6명으로 축소되는 비상사태를 대비하는 측면에서의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위인설법'(爲人設法·특정 사람 때문에 법을 뜯어고치는 것)이자 노골적인 '헌재 사유화법'이라고 맹폭했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의 헌재법 개정안은) 문형배·이미선·마은혁이 계속 재판관으로 근무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결국 위인설법이고 처분적 법률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며 "민주당은 헌법재판소를 민주당의 하부기관으로 운영하겠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사위 소속 여당 의원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도록 하는) 이 법도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선출과정에 하자가 있어 대통령이 임명을 보류하고 재선출을 요구할 수 있는 경우까지 모두 포섭하여 임명을 강제하는 것으로,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하는 삼권분립 원칙을 위배한 명백한 위헌적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같은 법이 본회의에서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 지는 불확실하다. 당초 계획과 달리 내달 1일 법사위 전체회의는 열지 않기로 했고, 추후 전체회의 일정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서다. 특히 두 법안은 민주당 지도부 차원에서도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범계 의원은 "내일 법사위 전체회의는 열리지 않는다"며 "오늘 통과된 두 법안은 법사위 1소위를 통과한 것으로 내일 전체회의는 없다는 것을 거듭 전한다. 여러가지 상황의 변동, 당 지도부와의 논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만큼, 하루하루가 대장정인 동시에 살얼음판을 걷고 있어 (두 법안이 본회의에 오를지 여부는) 예측이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