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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쇠하고 민중주의 득세한 이유는 '밈'


입력 2017.10.25 10:49 수정 2017.10.25 15:05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이념적 지형 불안한 것 밈 이론으로 잘 설명

보수정권 다시 서도 이념적 지형 바로잡지 못하면 또 다시 불안

지금 우리 사회는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열렬히 지지하고 지키려 애쓰는 시민들이 적다. 반면에, 대안적 원리인 전체주의나 민중주의에 뿌리를 둔 정책들은 점점 많은 추종자들을 얻는다.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깊이 분열되어 안정되지 못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급격한 정책적 전환을 겪는 현상은 이런 이념적 지형에서 나온 부분이 크다. 보수 정권이 몰락하고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지금은 이념적 성찰을 하기 좋은 때다. 실은 보수의 앞날에 관한 논의는 이런 이념적 지형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이념은 사회의 목적, 구성 원리 및 운영 방식에 관한 생각들의 복합체다. 자연히, 이념은 많은 생각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념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렇게 이념을 구성하는 생각들의 본질과 성격에 대해 살펴야 한다.

삶은 본질적으로 정보처리다. 유전자들에 든 정보들이 처리되어, 몸이 생기고 유지되며 다음 대로 이어진다. 뇌를 가진 동물들의 경우, 뇌에서 처리되는 정보들이 유전적 정보들을 보완한다. 그런 정보들은 뇌에서 뇌로 직접 전파된다. 이런 현상은 문화라 불린다. 즉 문화의 본질은 ‘정보의 비유전적 전달(non-genetic transmission of information)’이다.

생명체들이 진화하듯, 문화도 진화한다. 생명체들의 기본 단위가 유전자이듯, 문화에도 기본단위가 있으며 밈(meme)이라 불린다. 처음엔 사람만이 문화를 지녔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인간중심적 관점이 너무 편협하다는 깨달음이 퍼지면서, 다른 사회적 동물들도 문화를 지녔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920년대엔 포유류보다 훨씬 오래 전에 잘 조직된 사회를 이룬 개미와 흰개미도 문화를 지녔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었다.

이런 관점에 결정적 증거를 부여한 것은 영장류를 연구한 일본 학자들의 성과였다. 1947년 규슈 동남단의 작은 섬 고지마(辛島)에서 자연 상태의 일본 원숭이들을 연구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이마니시 긴지(今西錦司)는 원숭이 사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 퍼져가는 모습을 잘 관찰해서 뇌가 발달한 동물들은 원시적 문화를 갖추었음을 증명했다.

이 중요한 일화에서 주역은 ‘이모’라는 2살이 채 안 된 여성 원숭이였다. 당시 연구자들은 관찰을 쉽게 하려고 해안에서 원숭이들에게 고구마들을 나누어주었다. ‘이모’는 흙이 묻은 고구마를 그대로 먹지 않고 냇물에 씻어 먹었다. 이런 혁신은 이내 원숭이 사회에서 퍼져나갔다. 이어 ‘이모’는 바닷물에 고구마를 씻어 먹었고 고구마가 바닷물로 간이 밸 때까지 기다려서 먹는 것을 생각해냈다. 이런 혁신도 점점 널리 퍼졌다.

연구자들이 곡식을 모래에 뿌려주면, 원숭이들은 한 알씩 집어 먹었다. ‘이모’는 곡식들이 섞인 모래를 한 웅큼 들고 바다에 뿌려 물에 뜬 곡식들을 쉽게 골라 먹었다. 이 방식도 물론 이내 퍼졌다. 혁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구마와 곡식을 바닷물 속에서 먹는 어미들을 따라다니면서, 새끼들은 어릴 적부터 바다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원숭이들은 헤엄치는 것을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기나 조개를 잡아먹게 되어, 원숭이의 식생활에 혁명적 변화가 나왔다.

이마니시의 혁명적 학설은 인종적 편견 때문에 서양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로 많은 포유류와 조류가 문화를 갖추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그의 연구는 정당한 평가를 받았다.

이런 성과들을 종합해서 1970년대 후반에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밈 이론’을 주장했다. 그의 이론이 담긴 < 이기적 유전자 >와 < 확장된 표현형 >은 개척적 업적으로 평가되었고, 덕분에 밈 이론은 ‘밈 학문(mimetics)’이라는 원형 학문(proto-science)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런 밈 이론에서 이념을 이해하는 도움이 되는 사항들을 아래와 같다.

1) 문화는 유기체들과 마찬가지로 진화한다.
2) 문화의 단위인 밈들은 유기체들의 유전자들에 해당한다. 즉 밈들은 복제자(replicator)들이다. 유기체들의 몸이 유전자들을 보존하고 퍼뜨리는 수단이듯, 동물의 뇌들도 밈들을 보존하고 퍼뜨리는 수단이다. 그래서 유기체들의 몸이 궁극적으로 유전적 이익에 봉사하듯, 동물들의 마음은 그것에 서식하는 밈들의 이익에 봉사한다.
3) 밈은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정보이므로, 물질적 바탕을 지녔다. (물질적 바탕이 없는 것은 정보가 될 수 없다.) 밈은 동물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의 구조가 물질적 바탕이다.
4) 협력하는 유전자들이 한데 모여 복합체를 형성하듯, 협력하거나 동질적이거나 보완하는 밈들은 한데 모여 복합체를 이룬다. 이런 ‘밈 복합체(memeplex)’는 아주 거대할 수 있으니, 이념은 대표적이다.
5) 밈의 환경은 동물의 뇌이므로, 뇌의 천성에 잘 맞는 밈들이 번창한다.
6) 사람의 경우, 본능과 직관에 맞는 밈들이 이성과 과학에 바탕을 둔 밈들보다 번창한다.

밈 이론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적 현상들을 깔끔하게 설명한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테러리스트는 밈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본능이 철저하게 우리가 지닌 유전자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듯, 우리의 마음은 우리 뇌에 깃든 밈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라고 여기지만, 실은 우리 몸은 유전자들이 지배하고 우리 마음은 밈들이 지배하는 것이다. 예외는 없다. 누구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지식과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그 점에서 테러리스트나 그를 병든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 과학의 방법론을 따르는 사람들과 종교적 세계관을 믿는 사람들이 다르지 않다. 모두 자신의 뇌에 깃든 밈들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싸움은 사람의 뇌에서 벌어지는 생각들의 싸움이다. 투표도 시가전도 그런 보이지 않는 싸움의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이념의 중요성이 바로 거기에 있다.

밈들의 물질적 바탕이 뇌 신경세포들의 구조이므로, 어떤 밈이 바뀌려면 신경세포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큰 생체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수많은 밈들로 이루어진 밈 복합체인 이념이 바뀌려면, 엄청난 생체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연히, 사람들은 좀처럼 이념을 바꾸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증거들이 많아져도,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증거들을 열심히 찾는다.

어느 사회에서나 민중주의가 득세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동물의 뇌는 하루하루 생존하는 데 필요한 지식들로 채워졌다.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추상적 지식들은 들어설 틈이 없다. 사람은 이성을 통해서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사람의 뇌 자체는 근본적으로 본능과 직관을 따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념적 지형이 불안한 것도 밈 이론으로 잘 설명된다. 시장이라는 개념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본능은 부족이 재산을 공유하고 다른 부족들과 거래하는 일이 드물었던 원시시대에 다듬어졌다. 따라서 낯선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거래하는 시장이 낯설고 미덥지 않다. 그런 시장이 실은 자유와 번영을 가져오는 기구라는 것을 깨달으려면, 상당한 수준의 관찰력과 경제학 지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시장경제를 이해하고 감탄하고 지키려는 시민들은 늘 소수다.

게다가 학생들의 사회화를 돕는 초중등 교과서들이 오히려 반사회적이다.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성취를 가르치고 그런 성취의 바탕이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임을 설명하는 밈들보다는 우리의 성취를 깎아 내리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밈들을 많이 포함한다. 어릴 적에 그런 교과서들을 통해 받아들인 밈들은 뒤에 바꾸기 어렵다.

이런 사정을 깨닫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관한 작은 밈 하나라도 퍼뜨리는 것이 대한민국을 안정시키는 길이다. 보수 정권이 다시 서더라도, 이념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너무 불안한 이념적 지형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늘 불안할 것이다.

글/복거일 소설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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