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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와 아스날, 시기 놓친 ‘아름다운 이별’


입력 2018.03.19 17:21 수정 2018.03.19 17:21        데일리안 스포츠 = 박시인 객원기자

벵거 감독, 아스날과 다음 시즌까지 계약 진행

최근 세 차례 떠날 기회 있었지만 타이밍 놓쳐

아스날 팬들은 벵거 감독의 퇴진을 바라고 있다. ⓒ 게티이미지 아스날 팬들은 벵거 감독의 퇴진을 바라고 있다. ⓒ 게티이미지

최근 프리미어리그에서 감독의 수명은 이른바 ‘파리목숨’이다. 현대 축구로 접어들면서 감독 역량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독의 수명도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한 팀에서 장기집권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됐다.

현역 프리미어리그 감독 가운데 10년 이상 한 팀에 머물러 있는 지도자는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가 유일하다. 벵거 감독은 1996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22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2013년 은퇴한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과 더불어 벵거는 1990년대 중반부터 프리미어리그의 판도를 주도한 명장이었다.

지금이야 퍼거슨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지만 벵거 감독이 아스날 부임 후 약 10년까지의 경력을 놓고 보면 못지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4회를 차지했으며,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도 포함돼 있다.

물론 이 기간 퍼거슨은 리그 우승 5회, FA컵 우승 2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등 더욱 굵직한 성적을 거둔 것은 사실이나 아스날과 맨유의 양강 체제를 구축해 놓은 벵거 감독의 업적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2006년 아스날이 새 경기장 건축에 돌입하면서 벵거 감독의 가치도 하향곡선을 그렸다. 긴축재정으로 목표치를 우승이 아닌 빅4로 하향조정했고, 꾸준하게 챔피언스리그 진출의 성과를 달성한 것은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2013년 단기 부채를 모두 상환하면서 아스날은 본격적으로 돈을 지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아스날은 리그 우승을 달성하지 못한 채 FA컵 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퍼거슨 감독은 맨유에서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2011-12시즌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에 통한의 우승을 내줬지만 로빈 반 페르시를 아스날로부터 영입한 뒤 다음 시즌 리그 우승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감독 커리어를 마감한 것은 물론이다. 현대 축구에서 흔치 않은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반면 벵거 감독은 14년째 리그 우승과 인연이 없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 시즌 토트넘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했고, 빅4 실패로 유로파 리그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벵거 감독의 전술적 유연함과 대처 능력은 완전히 뒤쳐졌다는 평가다. 선수를 보는 안목도 예전 같지 않으며, 브리티시 코어 정책은 실패했다. 또, 강팀과의 경기에서 미흡한 경쟁력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축구는 오래전에 종적을 감췄다. 어설픈 수비 축구와 스리백 변신 등 몇 가지 방안을 모색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고질적인 수비 불안은 진행형이다.

리빌딩은 수차례 진행되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 여타 갑부 구단보다 돈을 쓰지 못했다는 논리는 2015-16시즌 레스터 시티 우승으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벵거 감독과 아스날의 아름다운 이별은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 게티이미지 벵거 감독과 아스날의 아름다운 이별은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 게티이미지

벵거 감독은 ‘아스날 바보’다. 누구보다 아스날을 사랑하고 아낀다. 그럼에도 적절한 시기에 물러날 때를 알아야 했다. 아스날을 정말 사랑한다면 팬들이 원하는 것을 귀 기울여야 한다.

아스날은 이미 벵거 감독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할 기회를 놓쳤다. 2014년과 2015년, 2017년 FA컵 우승을 차지했을 때가 적기였다. 아스날은 줄곧 벵거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고, 벵거 감독도 계약 연장 제의를 거부하지 않았다.

분명히 아스날의 성공 시대를 가져온 장본인이 벵거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의 암흑기를 만든 것도 벵거다. 장기 집권과 고집은 오히려 독이 됐다.

이제 계약 기간은 내년 여름까지다. 지난 시즌 재앙에 가까운 성적을 거두면서 아스날 팬들은 벵거 감독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현지 설문조사 결과 무려 88%에 달하는 비율이 벵거 아웃에 표를 던져다.

아스날 구단 내부 출입 기자 존 크로스에 따르면 "벵거 감독이 이번 여름 사임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아스날 구단 수뇌부에서는 최근 연이은 성적 부진으로인해 벵거 감독이 스스로 사임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아스날의 혁명을 가져온 벵거 감독의 상징성을 감안할 때 경질하는 그림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그리고 많은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아스날은 최근 스벤 미슐린타트, 라울 산레이 등 네임밸류가 높은 디렉터를 영입하며 개혁을 시도 중이다. 벵거 감독의 영향력도 점차적으로 줄여가고 있다. 하지만 다음 시즌까지 벵거 감독이 계약 기간을 완수한다면 리빌딩은 1년이 더 늦어지게 된다.

지난 몇 주 동안 아스날의 홈 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는 빈자리가 늘어났다. 팬들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더 이상 벵거 감독 체제로 아스날이 터닝 포인트를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저버린 지 오래다. 더 이상 FA컵 우승으로는 배고픔을 채워줄 수 없다.

남은 희망은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다. 현재로선 유로파리그 우승이 유일한 돌파구다. 유로파 우승팀은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본선으로 직행할 수 있다. 또, 아스날은 역사적으로 유로파리그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16강에서 AC 밀란을 제압한 아스날은 CSKA 모스크바와의 8강전을 앞두고 있다. 강력한 우승후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버티고 있어 유로파 우승을 장담하기 어렵다. 향후 아스날과 벵거 감독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박시인 기자 (asd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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