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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리 모조리 꿰찬 집권세력의 "비정하다"


입력 2018.11.30 07:00 수정 2018.11.29 21:02        정도원 기자

판공비·업추비·특활비 쓸 수 있는 자리 엽관에 혈안

靑특활비는 한 푼도 못 줄인다며 남 향해선 "비정하다"

판공비·업추비 쓸 수 있는 자리 엽관에 혈안
靑특활비는 못 줄인다며 남 향해선 "비정하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정부가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국민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것"이라고 토로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정부가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국민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것"이라고 토로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교과서에도 실려 널리 알려진 조선 중기의 문신 송순의 시조다. 십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세 칸짜리 초가집을 지어 바람을 맞으며 달과 주변 강산을 둘러보는 가난한 선비의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을 그려냈다.

그 송순의 분재기(分財記)가 전해 내려온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눠준 내역을 기록한 문서다. 분재기에 따르면 송순은 거느린 노비만 150여 명에 500마지기 이상의 논밭을 소유한 대지주였음이 드러난다. 정자에 대나무숲, 임야 등은 별도다.

십수만 평의 논밭과 수백 명 노비를 가지고서도 '십 년을 경영해 초려삼간을 지어낸다'고 자신을 가진 것 없는 사람, 서민적 지식인에 비정했다. 지금의 집권 세력의 정신적 원류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BS의 자회사 EBS미디어가 '세계 최연소 국가원수'라며 북한 김정은의 캐릭터 상품을 출시해 '으니굿즈' 대열에 합류했다. 이 와중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친누나가 EBS 이사장이라는 사실도 입방아에 올랐다.

태양광 업체 대표를 하고 있던 더불어민주당 전직 3선 의원은 농어촌공사 사장 자리를 꿰찼다. 그는 농어민 이익과는 별 관련도 없는 7조 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다 전력이 드러나자 여론에 떠밀려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를 지내던 시절 최고위원으로 '文지킴이'를 자처했던 또다른 전직 3선 의원은 철도공사 사장이다. 남북철도연결이나 SR 흡수통합으로 철도경쟁체제 허물기 등에 진력하다가 잇따른 철도 사고에 지난 23일 대국민사과를 한데 이어 28일에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재차 머리를 숙여야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같은 대학 운동권 선후배라는 이유로 의전비서관이 된 인물은 아셈(ASEM)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단체사진을 찍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패싱'당하는 의전실패를 야기하는가 하면, 지난 9월 '포용국가 전략회의'에서는 문 대통령이 책상을 손으로 짚고 넘어가게끔 하는 안팎에서의 '사고'를 치다가 급기야 음주운전이 적발돼 직권면직됐다.

코레일 사장이 된 오영식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은 잇따른 철도 사고에 지난 23일 대국민사과를 한데 이어, 2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재차 사과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코레일 사장이 된 오영식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은 잇따른 철도 사고에 지난 23일 대국민사과를 한데 이어, 2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재차 사과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세상의 온갖 좋은 자리는 눈에 띄는 자리, 띄지 않는 자리를 막론하고 전문성과 능력은 차치한 채 엽관(獵官)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판공비·업무추진비·법인카드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지위를 다투어 차지해놓고, 자신들이 써야 할 특수활동비는 한 푼도 줄이지 못한다면서, 누구보다 서민의 입장이라며 "비정하다"는 말을 쉽게 내놓는다.

국회에 제출한 정부 예산안에서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지난해와 똑같은 181억5000만 원을 청구해놓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삭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국회는 특활비 예산을 84%나 줄였다. 청와대 특활비도 같은 비율로 84%를 줄인다면, '비정 논란'이 일었던 한부모 가정시설 지원 예산을 메우고도 넉넉히 남는다.

대학교수 시절 트위터를 통해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며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했던 인물은 청와대 민정수석이 됐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 "(정부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여전히 배고프다"며 "정부가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국민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적폐놀음을 통해 구름 위로 날아오른 '용'들의 귀에 '붕어·개구리·가재'들의 "배고파 죽겠다"는 소리가 닿자 '이렇게 서민을 생각하며 성과를 냈는데도 부족하다니'라고 탄식하는 모습이다.

송순의 부유함을 보여주는 분재기는 널리 알려지지 않고, 선비의 안빈낙도하는 삶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조만 후세에 남아 전해진다. 지금의 집권 세력도 엽관에 골몰했던 위선과 자기기만을 숨기고, 서민 위하는 듯 했던 모습만 후세에 전하는데 성공할지 궁금해진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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