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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젠 재벌들 기합 안주고 지원키로 했나?


입력 2019.07.08 09:00 수정 2019.07.08 08:18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민족감정 그토록 부추기더니

실력도 안 갖추고 대결 벌였나…지금이 바로 외교력 발휘할 때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민족감정 그토록 부추기더니
실력도 안 갖추고 대결 벌였나…지금이 바로 외교력 발휘할 때


ⓒ청와대 페이스북 화면캡처 ⓒ청와대 페이스북 화면캡처

문재인 정부의 ‘기업정책’으로 얼핏 떠오르는 것은 ‘청산’ ‘기합’ 정도다. 직전 정부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혐의로 일부 재벌총수들을 구속하고 법정에 세워 집행유예(2심)이긴 하지만 유죄를 선고받게 했다. 또 다른 재벌 총수가 경영권을 박탈당한 배경에도 정부의 의도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연금공단이 주주권을 행사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는 타계했다.

민족감정 그토록 부추기더니

좌파들은 재벌이나 대기업을 죄악시한다. 여론의 법정에서, 경제발전이나 고용에 이렇다 할 기여는 하지 않으면서 특혜만 누린다는 논고를 끊임없이 해왔다. 이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정부 또한 이들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인상을 주었다. 오직 중소기업만이 산업의 기둥이고 대들보인 것처럼 추어주고 지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갈데없는 ‘적폐’ 신세다. (중앙일보의 기사 제목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일본이 한국경제 칠 준비할 동안…정부, 기업 쥐어짜기 바빴다.”)

그 재벌기업들에 대해 정부가 갑자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와 7일 오찬 회동을 갖고 일본의 (對)한국 수출규제 대책을 논의했다는 보도다. 재벌 ‘기합’주는 재미를 자랑(?)했던 김 실장까지 같이 참석했다니 별일이다.

그간 재벌기업은 정부나 좌파 언론, 지식인들에게서 경제후진성, 수탈적 경제체제의 원흉쯤으로 지적돼 왔었다. 일본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주요 소재·부품 대한(對韓) 수출을 규제가 심각한 문제인 건 맞지만, 반재벌적 정서를 뽐내온 정부의 경제정책 책임자들이 오찬까지 베풀다니! 그 간의 대기업에 대한 정부 측의 서슬로 봐서는 경천동지할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좌파의 전통적 무기이던 반일 혐일(嫌日) 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리는데 열과 성을 쏟았다. 반민족 분자가 되지 않으려면 한 목소리로 일본을 규탄하고 조롱할 일이었다. 민족감정과 국가관계를 뒤섞어버린 것이다. 정권을 장악하고 그것을 유지해 가는데 이만한 호재가 달리 없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그게 도를 더해가면서 우리의 분노를 일본은 당연히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식의 독선에 이르렀다. 게다가 대의는 우리에게 있으므로 일본은 우리의 분노표출을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이상한 자신감까지 겹쳤다. 일본이 진정으로 뉘우쳐 백배사죄하고 금전적 보상까지 끝낸 다음에야 외교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을 듯이 일본을 대했다.

실력도 안 갖추고 대결 벌였나

국가 간의 관계는 그런 게 아니다. 국익과 국익의 계산이고 경쟁이다. 당장의 이해관계에서도 계산이 다르면 마찰을 빚게 마련이다. 우리가 그들의 역사적 범죄행위를 들어 책임을 추궁한다 해도 그들이 우리의 감정에 동화되어 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외교문제는 외교로, 역사문제는 역사로 푸는 지혜를 발휘한는 게 중요하다. 당연히 정부 대 정부의 관계는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현실적 인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일관계를 지속적으로 악화시켜 온 사람은 문 대통령과 그의 외교 참모들이었다. 실력이 뒷받침된 ‘반일’이었으면 또 모른다. 기개만 넘쳐서 “일본 정도는 우습다”는 태도로 일관한 게 문제다. 그런 감정이 국민 일반에게도 확산돼 세계에서 일본을 만만하게 보는 유일한 국가 및 국민이 되었다. “그게 어떠냐, 오히려 자랑스럽지”라고 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그게 어떤 이익을 우리에게 주는가? 그렇게만 생각하면 우리는 일본을 넘어서게 되는가?

기업들은 일본과 감정이 있을 리 없다. 상대가 누구든 거래할 필요가 있으면 한다. 역사적 원한 같은 것에 구애되어 거래를 끊는 식의 민족감정‧도덕주의로는 기업 활동을 할 수가 없다. 그 기업들, 그들의 상인정신이 나라를 살찌우고 국민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정부는 민족 지상(至上)의 가치관을 국가 지도이념처럼 내세웠다. 그 같은 인식이라면 북한 김정은 집단은 무한 애정과 신뢰의 대상이 되고 일본은 증오와 적대의 상대가 된다. 기업의 역할을 정부가 대신할 수 있다는 좌파적 인식도 서슴없이 과시했다.

어쨌든 일본정부는 더 이상 한국 정부와 우호·신뢰관계를 지속해갈 생각이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기 단계다. 일본이 앞으로 자신들이 내놓을 수 있는 여러 카드의 샘플로서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제시했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본격적인 외교를 해보자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정부나 언론들은 반사적으로 적개심부터 드러냈다.

지금이 바로 외교력 발휘할 때

일본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를 겨냥해 한국을 희생양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반일감정이 부추겨진다. 할 테면 해 보라지, 우리가 당하고만 있나. 일본이 난처해질 수도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벌이자. 일본여행 취소해야 한다. 분위기가 이런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7일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한일관계 악화로 일본계 자금이 한국에서 빠져나가도 문제가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라는데 양국 간 적대감은 이런 식으로 에스컬레이트 되는 것이다.

정부 고위인사들이 재계 인사들과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는 것 자체는 나쁘다할 까닭이 없다. “어, 정부가 웬일로?” 오히려 이런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대화 내용이다. “기업들이 어렵더라도 정부의 대일 정책에 적극 호응하라”는 주문은 제발 없었기를 바란다. 그게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본과 사이에 꼬인 실타래를 풀겠다, 새로운 수입선을 개발하는데 적극 돕겠다, 차제에 외교력을 풀가동하겠다. 뭐든 지원이 필요한 것은 서슴없이 말해 달라. 이런 뜻의 말이 오갔기를 기대한다. 당연한 일 아니냐고 하겠는가. 그게 어쩐지 미심쩍어서 하는 주문이다.

언론보도로 추측하자면 7일의 정부‧재계회동이 10일로 예정된 문 대통령과 재계 대표 간담회를 위한 준비모임 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래서 홍 경제부총리나 김 정책실장이 회동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아직 정부 책임자들에게는 절박감이 없다는 말이 된다. 어쩌면 대통령과 면담 시 ‘해도 될 말, 해서는 안 될 말’을 정리하는 모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정부로 인해 빚어진 일은 정부가 책임져야 옳다. 기업들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현장 사정을 신속히, 그리고 충분히 파악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건의하고 대통령이 들어주는 간담회가 되기 위해 사전에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는다는 뜻이었을까? 지금 그렇게 모양 따질 여유가 어디 있는가.

아직도 멀었다. 정부의 책임자들에게서 절박함을 찾아볼 수 없다. 일본에 맞서는 게 용기가 아니다. 그들을 잘 설득해서 일본이 이번 조치를 철회토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국가의 외교력 아니겠는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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