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사상 초유 전국단위 선거 4연패 늪
2022년 3월 대선 패하면 6월 지방선거 '도미노'
중도 표심 잡으려면 탄핵 입장 정리·책임 절실
미래통합당이 4·15 총선에서 참패하며 전국 지역구 253석 중 84석에서만 당선인을 낸 정당으로 위축됐다. 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전국단위 선거에서 벌써 4연패다.
찬물을 흠뻑 뒤집어썼는데 벌써 다음 파도가 눈앞으로 밀려들고 있다. 2022년에는 3월에 대선, 6월에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특히 6월 지방선거는 3월 대선에서 당선된 새 대통령이 5월에 취임하고 한 달 뒤에 치러지기 때문에 여당이 절대 유리한 구조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통합당 중진의원은 선거운동기간 중에 "우리 당이 지방선거에서 2018년처럼 전멸당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총선을 치르면서 실감이 나더라"라며 "광역·기초의원이 다 전직이 되면서 조직이 붕괴돼 선거 치르기가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보수정당이 2022년 지방선거까지 진다면 총선-대선-지방선거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2순환하며 패배만 거듭하는 꼴이 된다. 이후 총선에서는 누구도 당선을 자신할 수 없는 환경이 펼쳐질 것이다. 보수 궤멸이 말그대로 목전으로 다가오는 셈이다.
문재인정권 3년 간의 독주가 이어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전통적 보수 지지층은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도 결집했다는 게 중론이다. 앞으로의 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수정당의 취약지점을 강화하는 재건 작업이 절실하다.
우리나라 보수정당의 3대 취약지점으로는 △중도 △청년 △호남이 꼽힌다. 그러나 접근 방법을 놓고서는 보수정당 내에서 의견이 갈린다. 청년을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론이 없다. 중도에 대해서는 '과연 중도라는 게 실재하느냐'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치는 것 아니냐'라는 반론이 일부 나온다. 호남은 과거에는 공략하려는 척이라도 했지만 요즘은 당장 사정이 급해져서 그런지 언급조차 없어졌다.
과연 중도층이란 실재(實在)하는가. 표면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중도층이 가장 두텁다. 데일리안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총선 직후인 지난달 20~21일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스스로를 중도진보라고 답한 응답층이 24.6%, 중도보수라고 답한 응답층이 22.5%로 합쳐서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47.1%나 된다. 진보(19.2%)나 보수(18.0%)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정치고관여층에는 중도가 거의 없다. 보수나 진보 어느 한 쪽으로 입장을 정하고 웬만해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우리나라 정치고관여층의 대표자 격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나같은 사람은 보수정당에서 세종대왕이 나와도 찍지 않는다"고 말한 그대로다.
중도층 '정치에는 무관심하나 투표는 하는 사람'
후보자토론회 시청률 0.9%, 방송연설도 1.2%
'아주 큰 사건'에 대한 인상, 상당 기간 표심 결정
이러한 정치고관여층이 정치인과 통화·문자·SNS 등을 통해 소통한다. 정치인이 점점 정치고관여층에 포위되다보니 사람들이 다 정치에 관심이 깊은 줄 알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 줄 안다. 낙선한 통합당 재선 의원은 며칠 전 "종로에서 황교안 대표를 찍은 표가 미래한국당을 찍은 표보다 적다는 게 이상하다"며 "세상에 후보는 이낙연 찍고 당은 한국당 찍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왜 없겠는가. 선거운동기간 중 충북도청 롯데시네마 앞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이낙연 찍겠다"고 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서울 종로에 출마했기 때문에 충북 청주에서는 찍을 수 없다. 당황해서 반문했더니 곁에 있는 동행인에게 "너도 이낙연 아니냐"고 물었다. 동행인은 "TV에서 봤는데 (이낙연 전 총리가) 괜찮아보이더라"고 답했다.
과연 이들이 투표 당일 기표소에 들어가서 어디에 투표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저런 깜빡깜빡하는 표들이 모여 당락을 결정하는 게 사실이고, 그런 표들의 비중이 정치인이나 정치고관여층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결국 중도층은 '평소 정치에는 무관심하지만 투표는 해야할 것 같아서 하는 사람들'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치무관심층은 매우 두텁다. 대전의 한 지역구의 선관위 주관 법정후보자토론회는 평일 오후 6시 20분부터 지상파를 통해 방송됐는데도 시청률은 0.9%에 그쳤다. 토론회 직후 방송된 후보자 방송연설의 시청률은 1.2%였다.
오랜 기간 각종 선거에 관여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중도층은 선거운동기간을 포함해 평소에는 정치에 거의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라며 "이들 중도층은 나라를 뒤흔드는 아주 큰 사건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상당 기간 머릿속에 남겨두고 표심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중도층이 통합당을 찍지 않게끔 하는 '큰 사건', 아직도 그 인상이 지워지지 않고 있는 '큰 사건', 정치무관심층조차 모를 리 없는 '큰 사건'이란 무엇일까. 시사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총선 직후였던 지난달 18~19일 유권자들이 총선에서 어떤 인식을 갖고 투표했는지 분석한 '유권자 인식조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유권자 인식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중도층 사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은 "잘못했다"는 응답이 72.4%로 "잘했다"(15.5%)를 크게 앞섰다. 보수층은 "잘못했다" 89.4% "잘했다" 7.0%였는데, 중도층이 보수층과 인식을 가까이 한 것이다. 이 사안에 있어서는 진보층조차 "잘했다" 47.2% "잘못했다" 43.8%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중도층은 현 정권이 경제정책 중 부동산 정책을 "잘못했다"는 응답도 57.1%로 과반이었으며 "잘했다"(23.1%)를 두 배 이상 앞섰다.
스스로 "큰 선거 여러 번 치러봤다"고 자처하는 김종인 전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이 두 가지 이슈를 중도층의 '인상 표심'을 결정지을 쟁점으로 가져가려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선거운동기간 내내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국 이야기'와 '경제 이야기'만 했다. 의도대로 맞아떨어졌다면 총선은 보수 야권이 이겼어야 했을 것이다.
중도층, 탄핵 공감 75.5%…3년 전과 변화 없어
'통합당 책임 안졌다' 76.5%…보수층도 62.5%
"책임지지 않고 중도에 '표 달라'?…후안무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중도층의 뇌리에 조국 전 법무장관과 경제정책 문제는 굳이 물어보면 이쪽이 옳고 저쪽이 그르다는 인식 정도는 있었지만, 표심을 결정지은 핵심 쟁점은 아니었던 셈이다.
바른미래당에 몸담았다가 중도보수대통합을 통해 통합당에 합류, 이번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신 한 정치인은 "중도층이 문 대통령도 썩 잘했다고 여기진 않지만 도저히 통합당이 이기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라며 "이번 총선이 탄핵 이후 첫 총선인데, 우리 국민들이 탄핵당했던 정당에 표를 줬겠느냐"라고 한탄했다.
그말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제를 설문한 결과, 중도층에서 탄핵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75.5%, 비공감한다는 응답은 18.4%에 그쳤다. 전체적으로도 탄핵 공감 75.6%, 비공감 20.0%로 탄핵 직후의 응답 비율 '80 대 20'에서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변화가 없었다. 진보층은 탄핵 공감 94.3% 비공감 4.8%로 단일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보수층은 탄핵 공감 46.5% 비공감 47.4%로 자중지란 양상이었다.
통합당이 탄핵 당시 집권여당으로서 탄핵에 대한 책임을 졌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중도층 76.5%가 "책임진 게 없다"고 답했다. "이미 책임졌다"는 응답은 20.3%에 그쳤다. 보수층조차 "책임진 게 없다"는 응답이 62.5%에 달하고 "책임졌다"는 응답은 33.4%에 불과한 마당에, 중도층에게 이 문제를 물어보는 것은 들으나마나였을 수도 있겠다.
결국 보수정당 재건의 방책으로 중도층의 표심을 다시 사기 위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하게 정리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통합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에는 '탄핵무효, 무죄석방'이나 '살아만 계십시오' 따위의 슬로건을 총선 때 내건 극단 세력과의 단호한 절연도 당연히 포함된다"며 "보수층 내부조차 그 큰 사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중도층더러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라고 자성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볼 때, 총선 이후 범보수의 움직임에는 우려되는 대목이 많다는 지적이다. 황교안 전 대표가 정치무대에서 퇴장한 뒤, 범보수의 유력 대권주자를 자처하는 한 무소속 당선인은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당으로 복귀하면 동료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 결의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해 중도층의 67.0%는 "잘했다"고 답했다. "잘못했다"는 23.8%에 그쳤다. 이 사안에 대해 진보층은 93.8%가 "잘했다"고 했으며, 반대로 보수층은 57.0%가 "잘못했다"고 평가했다. 중도층이 진보층과 가까운 입장이고, 보수층과는 괴리가 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보수 유력 대권주자가 중도 민심과 역행하는 언동을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분석이다.
통합당 관계자는 "그분이 본인을 살려준 대구경북의 민심을 고려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면서도 "2022년 대선에서도 중도 표심을 잡지 못해 진다면, 3개월 뒤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는 대구시장·경북지사마저도 우리 당 후보가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주의를 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