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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강수연, 지상의 별에서 천상의 별로…1만여 팬들 지켜본 가운데 영결식 진행


입력 2022.05.11 11:11 수정 2022.05.11 11:14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유지태 사회로 영결식 진행…영진위 공식 유튜브 통해 생중계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임권택 ·설경구·문소리·연상호 감독 추도사

경기도 용인공원 안치

한국 영화 그 자체였던 월드스타 강수연이 동로 영화인들의 배웅 속에 영면에 들었다.


ⓒ강수연 장례 위원회 제공

11일 오전 10시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에서 고 강수연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인 만큼 선후배 등 동료 영화인들이 참석했다.


영결식은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로 진행됐으며 약 1만 여명의 시청자들이 고인을 그리워하며 지켜봤다.


이날 영결식 사회는 배우 유지태가 맡았다. 유지태는 "실감이 안난다. 영화 속 장면이었으면 했다. 수연 선배님을 떠나 보내는 자리에 가족분들과 영화계 선후배 여러분들이 함께해주셨다"라면서 고인을 기리는 묵념으로 영결식을 시작했다.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오늘 우리 영화인들은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다. 배우 강수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참담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떠나보내드리고 한다"라고 추도사를 낭독했다.


이어 "우리가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졸지에 제 곁을 떠나다니, 건강해 보였는데 어찌된 일입니까?"라고 황망해하며 "모스크바에서 처음 만난지 33년이 흘렀다. 그 동안 아버지와 딸처럼, 오빠와 동생처럼 지내왔는데, 나보다 먼저 떠날 수가 있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수연 씨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장시간 머물며 영화제를 빛내준 별이였고 상징이었다. 스물 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월드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멍에를 지고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잘 버티면서 잘 넘기며 살아왔다. 당신은 억세고도 지혜롭고, 또 강한 가장이었다"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김 위원장은 "범접할 수 없는 미모와 위용을 갖추면서 남자 못지 않은 강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뒤따르게 했다. 오랜 침묵 끝에 새로운 영화로 타고난 연기력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강수연의 모습을 보게되리라 믿고 기뻐했는데 그 영화가 유작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 응급실에서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당신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비록 강수연 씨, 당신은 오늘 우리 곁을 떠나지만, 지상의 별에서 천상의 별로 우리 영화를 비추며 끝까지 화려하게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라고 전했다.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임권택 감독은 "수연아, 친구처럼 딸처럼 동생처럼 네가 곁에 있어 늘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서 서둘러 갔니. 편히 쉬어라"라며 고 강수연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설경구는 "강수연 선배님, 한달 전에 오랜 만에 통화하면서 촬영이 끝나면 바로 보자고 했는데 곧 있으면 봐야 하는 날인데 선배님의 추도사를 하고 있으니 너무 서롭고 비통하다. 너무 비현실적이고 영화의 한 장면이어도 찍기 싫은 끔찍한 장면일텐데 이 자리가 너무 잔인하다"라고 애통해했다.


그는 "강수연 선배님과는 1998년 영화 '송어'란 영화를 찍으며 첫 인연을 맺었다. 영화 경험이 거의 없던 저를 하나에서 열까지 세세하게 가르치며 도움을 주셨다. 예산이 작은 영화라 모든 것이 열악했고 먹는 것이 부실할까 속상해하시며 전체 회식을 시켜주시기도 했다. 선배님의 막내고 퍼스트이고 세컨드였던 것이 너무너무 행복했다.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던 저에게 앞으로 영화를 계속 할 것이라는 용기와 희망을 주셨다. 저는 선배님의 영원한 조수고, 선배님은 저의 영원한 사수다"라고 말했다.


설경구는 "비단 저 뿐만 아니고 모든 배우들에게 무한 애정과 사랑을 주신걸로 알고있다. 후배부터 선배들까지 다 아우를 수 있는,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거인같은 대장부였다"라고 회상하며 "너무 당당해서 외로우셨던 선배님,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고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은데 안타깝고 비통하다. 그러나 선배님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별이 돼 빛을 주시고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나의 친구, 나의 누이, 나의 사부님, 보여주신 사랑과 염려, 배려, 헌신, 영원히 잊지 않겠다. 사부와 함께여서 행복했다. 사랑하고 더 보고싶다"라고 마무리 했다.


배우 문소리는 눈물 속에 추도사를 읽어내려갔다. 문소리는 "언니의 소식을 듣던 날 저는 친구네 있었다. 언니가 영원히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듣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친구가 '청춘 스케치' LP를 들고 나왔다. 여전히 언니의 당돌한 목소리가 좋아 웃으면서 들었다"고 말했다.


문소리는 월트 휘트만의 시 '라일락 꽃이 뜰 안 가득 피었을 때'를 인용하며 "이 마음이 제 마음과 너무 똑같아서 또 읽었다. 이어 영화의 세계라는 게 땅에만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곳에서 많은 영화인들과 영화 한 편 하시라"라며 "한국 영화에 대한 언니 마음 잊지 않겠다. 여기서는 같은 작품 못했지만 이 다음에 우리 만나면 같이 영화 하자"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고인의 유작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 선배 자체가 한국영화였다. 이 무거운 멍에를 지는 걸 강수연 선배는 두려워하지 않았다"라고 애도하며 강수연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연상호 감독은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 한 영화 관계자가 나를 잡고 영화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영어가 서툴러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는데 옆을 지나가던 강수연 선배가 나서서 통역을 해줬다. 난 그 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을 대표하는 강수연 선배가 칸 관계자 앞에서 쩔쩔 매는 독립 영화 감독을 대신해 통역을 자처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섰다. 자신이 한국 영화 자체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연 감독은 "몇 년 전 한 영화를 기획했다. 한국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는 SF물이라 두려움이 커 어떤 배우와 함께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 때 떠오른게 강수연 선배였다. 용기 내 시나리오를 드리고 몇 번의 만남 끝에 '그래 한 번 해보자'란 소리를 들었다. 그 때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든든한 백(배경)이 생긴 것 같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강수연 선배와 영원한 작별을 하는 대신, 난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 강수연 선배의 얼굴을 마주하고 새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하려고 한다. 배우 강수연의 연기를 현재진행형이다. 선배의 마지막 영화를 함께하며 선배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배의 마지막 영화를 보여주기 위한 나도 노력할 거다. 그때까지 내가 선배의 마지막 든든한 백이 되겠다"라고 약속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고인의 활약이 담긴 영상과 제니퍼 자오 대만영상위원회 부위원장, 차미밍량 감독, 배우 양귀매가 고인을 애도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편 강수연은 지난 5일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다 7일 오후 3시께 별세했다.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돼 경기도 용인공원에 안치된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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