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거창한 의미 도출보다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좋아함’의 끝을 찾아보고 싶었다.”
<편집자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이 확대되고, 콘텐츠들이 쏟아지면서 TV 플랫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창작자들도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어 즐겁지만, 또 다른 길을 개척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PD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현재 티빙 통해 공개 중인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은 매회 새로운 주제로 케이팝(K-POP)에 대해 이야기하는 8부작 다큐멘터리다. 아티스트의 이야기는 물론, 그들을 응원하는 팬덤, 그리고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케이팝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다큐멘터리 크리에이터들이 모인 제작사 필름팍투라의 임홍재 PD를 비롯해 머쉬룸 스튜디오의 이예지, 김선형 PD 등 여러 창작자들이 모여 함께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케이팝 제너레이션’의 문을 여는 ‘덕질’에 대해 파헤친 1회와 계보 탐구한 4회 비롯해 추후 공개될 5, 8회까지. 총 8부작 중 4편을 임 PD가 제작했다.
앞서 음식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셰프 코리아’ 비롯해 웹 드라마 ‘로봇이 아닙니다’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연출한 임 PD지만, 그 역시도 음악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케이팝에 대해 깊이 있게 파헤치는 ‘케이팝 제너레이션’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가장 주목받는 산업 중 하나인 ‘케이팝’을 향한 입체적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방식이라면 기존의 케이팝 콘텐츠와는 다른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는 워낙 콘텐츠들이 많아서 ‘무엇이 달라야 할까’가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다. 케이팝 관련 콘텐츠들도 지금까지 많았지만, 아쉬운 부분은 회고적인 접근이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역사부터 시작해 오늘날 어디까지 이르렀는가로 마무리를 짓는. 특히 서구 금발 백인들이 열광하는, 다소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결과만을 다뤄왔던 것 같다. 너무 아티스트나 결과물 위주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입체적으로 다뤄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케이팝은 장르라고 할 수도 있고,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음악뿐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케이팝을 수용하는 팬도 있을 것이고, 미디어 환경도 있을 것이다. 다면적 방식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첫 회의 주인공인 ‘팬덤’을 다루는 것부터 쉽지는 않았다. 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만 의미가 완성될 수 있는 회차였지만, 그들을 카메라 앞에 데리고 오는 것부터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콘텐츠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는 소신만큼은 확고했고, 이러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그들을 설득해 나갔다.
“그들을 섭외하기 위해 기술적인 뭔가를 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기획안이 가장 중요했다. 수동적 팬이 아닌, 중요한 주체로 거듭나고 있는 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것을 담았다. 우리는 당신들의 편이고, 그리고 당신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나오고 싶다는 팬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도 아무래도 TV 비롯한 기존의 다큐멘터리 형식에 익숙한 사람이니까. 그건 어떤 것을 숨겨야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팬으로서의 나와 일상에서의 나를 분리하는 팬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다큐멘터리의 원칙인 팬들의 초상이용 동의서라던가, 이런 부분들은 물론 꼼꼼하게 확인하고 진행했다.”
팬들은 물론, 산업 종사자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케이팝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만큼 다루는 주제도, 또 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어렵고 복잡했다. 이에 차우진 평론가가 스토리 총괄 프로듀서를 맡는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기존의 케이팝 콘텐츠들과는 다른 의미를 도출해 낸 것이 ‘케이팝 제너레이션’만의 강점이 되고 있다.
“스토리 총괄 프로듀서로 차우진 음악 평론가님을 모시기도 하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획자나 평론가 분들을 모셔서 우리가 하려는 기획의 의미를 충실하게 다졌다. 케이팝이 하나의 상품이자 음악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도 가지고 있더라. 케이팝이 곧 라이프 스타일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고 있더라. 우리는 문명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팬들은 음악 좋아하기도 하지만, 뮤직비디오처럼 콘텐츠 자체를 좋아하기도 한다. 또 팬과 아티스트의 소통 방식이 하나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문화적 총체라는 것을 하면서 알게 됐다.”
물론 이러한 깊이 있는 내용을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다. 특히 어린 케이팝 팬층까지 아우르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활용하기도 했다. 미장센에 공을 들이거나, 아티스트들의 실험적 무대를 통해 흥미 높이는 등 다양한 노력 통해 누구나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다큐를 탄생시켰다.
“가상의 무대를 만들기도 하고, 다소 실험적인 미장센을 시도하기도 했다. 곧 공개될 회차에서는 보아, 선미, 아이브, 르세라핌 등이 마련한 무대들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는 포맷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흥미유발거리도 보여줄 수 있는 장치들을 위해 신경을 썼다. 특히 최근의 콘텐츠들에 익숙한 케이팝 팬들에게도 너무 무겁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흥미로운 예처럼 보일 수 있게 형식적인 고민들을 만이 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케이팝에 대한 거창한 결론을 내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지금 케이팝이 어떤 의미인지를 짚어내기도 하지만, 아티스트는 물론 팬들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케이팝을 즐기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임 PD였다.
“케이팝에 대해 너무 의미화를 거대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가주의적 또는 민족주의적 결과물로서 보여주지 말자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데, 과잉해서 해석하고. 과대 포장하기 시작하면 그 안의 섬세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 그 과정들에 대해 알아보자는 것이다. 사실 모든 이들이 좋아서들 하고 있다. 아티스트들도 물론이고. 그 ‘좋아함’의 끝을 찾아보고 싶었다. 고민의 지점은 바로 여기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즐겁고 또 재밌게 임하고 있는 것이 케이팝이다. 사명감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