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갱생' 전력하는 北
주민들은 '각자도생'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31일 북한인권보고서를 사상 처음으로 공개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는 탈북민이 직접 경험·목격하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기술했다. '탈북민 증언집' 성격을 띠는 만큼, 사실 검증이나 함의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450쪽 분량의 보고서는 △시민적·정치적 권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취약계층 △특별사안(정치범수용소·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등 총 4개 파트로 구성됐다. 데일리안은 파트별 주요 사례를 정리해 소개한다.
'평양과 지방 사이에
식량 배급 차이 커'
북한은 사회주의헌법(2019) 제25조에서 국가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온갖 조건을 마련해 준다고 적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주요 계기마다 의식주 해결 의지를 피력해오기도 했다. 연중 각종 회의체를 가동해 농업 증산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자력갱생 구호에 함몰돼 주민들을 각자도생으로 내몰고 있다는 평가다.
수집된 증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의 식량 배급은 △직장이 없는 미성년 자녀·전업주부·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 배급'과 △소속 직장에서 배급하는 '기업소 배급'으로 나뉜다. 다만 농장원(농민)은 '결과'에 따라 차등 분배를 받는 만큼 배급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국가배급의 경우 곡물 종류나 양·주기 등에서 평양과 지방 사이에 차이가 큰 것으로 파악됐다. 평양은 비교적 배급이 원활했지만, 양강도 운흥군에선 지난 2013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배급이 이뤄진 이후 2019년까지 배급이 전무했다고 한다.
기업소 배급은 당국과 무관한 '자체 배급'을 진행해 여건에 따라 곡물 종류·양·빈도 등에서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지난 2019년 평안남도의 한 사업소 소속 노동자는 7년여의 근무기간 동안 한 번도 배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접경지역인 함경북도·양강도 등에서 설립·운영되던 북중 합작회사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임금을 제때 지급했지만, 유엔 제재 도입 이후 문 닫는 곳이 늘었다고 한다. 원유 수입 제한, 중국인 관광객 감소 등으로 관광업·광산업·무역업 등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텃밭 일구거나 가축 사육
다른 가족이 장사로 돈 벌기도'
배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북한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식량 확보에 나서는 상황으로 파악됐다.
농장원은 자신만의 텃밭, 뙈기밭(화전)을 일구거나 염소·돼지 등 가축 사육을 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오전엔 협동농장에서 일하고, 오후엔 개별 경작에 나선다는 설명이다.
배급이 넉넉잖은 기업소 근무자의 경우, 가족들이 별도 경제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특히 여성들이 장마당(시장)에서 음식장사나 소매업에 나선다고 한다. 채취한 나물의 중국 밀수 등을 통해 생계에 보탬이 됐다는 증언도 있었다.
소속된 직장에 '수익금'을 납부하며 출근하지 않고 개인적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노동자도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한 탈북민은 지난 2019년 함경남도 기업소에 문건만 올리고 직매점에서 개인상점으로 옷 장사를 했다고 한다. 차량을 구매해 택시사업소에 등록 후, 월 상납금을 사업소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택시 일을 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감기 치료에 마약 사용
공부 위해 학생이
필로폰 각성효과 오용'
수집된 증언에 따르면, 고급 인력으로 분류되는 의사조차도 급여가 부족해 사적 의료행위나 부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식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는 사적 의료행위는 처벌 대상이지만, 당국 차원의 적극적 단속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북한에선 마약의 오남용 사례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편이나 '빙두'로 불리는 필로폰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데다, 일반 가정에선 마약을 의약품 대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보고서는 "마약을 감기·염증·기관지·축농증·신경통·뇌혈전·허리 통증·장티푸스·관절염·통풍·뇌졸중·생식기 질환 치료 등에 사용했다는 다수 증언이 수집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성별·연령·계층에 상관 없이 마약 오남용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성효과로 불면증세가 발현되는 필로폰을 '활용'해 공부하는 학생까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