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였는데…"준비 부족으로 사회 요구 못읽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독재 시대 헌법을 바꾸기 위한 칠레의 '신헌법 국민투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결됐다. 칠레 정부가 시민들의 요구를 개헌안에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칠레 매체 엘메르쿠리오 등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실시된 칠레 신헌법 제정 찬반 투표는 찬성표 44%, 반대 55%로 집계됐다. 찬성표가 과반에 이르지 못해 부결된 것이다. 이에 따라 피노체트 군부정권이 1980년 제정한 헌법은 앞으로도 그 효력을 유지하게 됐다. 현행 칠레 헌법은 소수의 기업과 엘리트층이 서민·노동자 계급의 희생을 정당화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칠레는 지난 2019년 10월 사회 불평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계기로 새 헌법 제정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2020년 10월 25일 국민투표에서 78.3%의 압도적 찬성으로 새 헌법 제정을 결정했다. 2021년 출범한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는 진보적 성격의 제헌의회를 구성해 이듬해 9월 헌법안을 완성시켜 국민투표에 부쳤다.
그러나 당시 개헌안에 지나치게 극단적인 다문화주의와 필요 이상으로 부여된 지방 정부의 자치권 등이 포함되며 반대여론에 부딪혔다. 당시 법안은 올해보다 더 높은 61%의 반대표를 받아 부결됐다. 지난해 개헌안이 지나치게 진보적이었다면, 올해 개헌안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올해 법안에는 사실상 낙태를 전면 금지시키는 '광범위한 태아의 생명권'과 부자들만 좋아하는 '주택 보유세 폐지' 등이 포함되며 거센 반발을 불렀다.
또 다른 현지매체 라테르세라는 “내년 지방자치단체선거와 내후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이번 투표는 보리치 칠레 대통령에게 마지막 기회였다”며 “준비 부족으로 변화된 사회를 반영하지 못한 보리치 정권의 실책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