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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듯 닮은 '명함 대란'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4.02.19 07:00 수정 2024.02.19 07:00        김수현 기자 (water@dailian.co.kr)

'재명 바라기' 방지 위한 경선 취지였는데 맹점 찾고 너도나도 '근거리 자랑'

'다당제 가치 위한다' 말하고 며칠 숙고 후 발표한 게 거대 정당 유지 '꼼수'

훌륭한 위인은 못 되어도 창피한 잔머리는 없는 야당의 맏형 되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묵념하고 있다. ⓒ뉴시스

연휴를 맞아 고향인 광주를 찾았다가 작은 소동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칭 '명함 대란'인데,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이력을 명함 이력에 넣느냐 빼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평생을 산 지역지 기자는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민주당의 심장이 위상을 잃고 대표 친분에만 기대고 있다"고 한탄했다. '대안이 없는 미래'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심정이 오죽 답답한가를 보여주는 짧은 순간이었다.


경선의 속성이 통상 '인재 능력보다 마케팅'이라지만 절망스러운 것은 이번 사례가 유례없는 '기이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올해 총선에서 당내 경선 시 경력을 표기할 때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등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특히 야당세가 강한 지역에서 영향력이 컸던 정치인의 이름을 쓸 경우 그렇지 않을 때보다 여론조사에 큰 격차가 발생해 공정한 결과물을 받아보기 위한 취지다.


이 지침에 따라 민주당 예비후보들은 대부분 '이재명'을 비롯한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빼고 선관위에 경력을 등록했다.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 특보'의 경우 '민주당 당대표 특보'라고 기재하는 식이다. 하지만 지역 모 후보가 '이재명'을 포함한 한 줄 경력만 등록하면서 판이 뒤집어졌다.


다른 후보들은 선관위에 대표경력을 2개까지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재명'이 없는 직함을 넣었지만, 문제의 주인공은 '한 줄 경력'이라 대체할 직함이 없다는 이유를 내놨다. 이같은 법과 규정 사이의 빈틈을 포착한 다른 후보들도 잇달아 '이재명'이 들어간 한 줄 경력으로 선관위에 등록을 변경하면서 문제는 더 커졌다.


술자리에서 가볍게 지나간 이 이야기가 유독 기억 속에 강렬히 각인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명함 대란과 비슷한 '기행 같은 번복'이 불과 얼마 전에도 있었던 것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만에 논의된 일이 아닌 지겹도록 몇 달, 일 년 가까이 고심하고 숙고한 선거제였다. 그 어느 것도 중대한 결정이 아닌 것이 없었겠지만, 다당제 가치를 지향해온 민주당 내부에서는 특히 논쟁이 길고도 치열했다.


결말은 허탈했다. 결론은 국민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이상(준연동형)보다 정권 심판을 위해 1당이 돼야 한다는 현실(병립형)의 문제로 압축됐다. 2~3일 '장고' 끝에 결론 내려졌다지만, 몇 년 전 선거장에서 받아봤던 그 이상하게 길었던 종이를 떠올리자 묘하게 이번 명함 대란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확인된 것은 이 대표의 선거제 결단이 있었던 뒤 당내 106명의 의원이 이 결정을 지지하는 성명을 낸 데서 알 수 있듯 당내에서는 추가적 갈등이 없었다는 점이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게도 구럭도 다 살리는, 이재명 대표의 역사적 결단을 크게 환영한다"고 했고,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대승적 결단"이라며 "우리 민주당은 '퇴행의 길'이 아닌 '진보의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라보는 사람들은 문제점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련의 이력 소동을 놓고 지역민들의 고개가 갸웃거렸듯이 당원은 물론이고 실무진들까지 "이게 맞느냐"고 반문하는 이가 늘고 있다. 그런데도 공개적인 반발이 크지 않은 건 슬프게도 별다른 묘수가 없기 때문이지, 잘하고 있는 게 아닌 것을 더욱 알 터다.


이 대표는 그저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어서 과거의 기행을 유지하는 역에 머물까. 아니면 통합을 우선시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의 책임자가 될까. 그저 '위성 정당'을 만드는 졸렬한 '위선자'는 아니길 바란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내며 유능한 실용주의 행정가 이미지를 보였던 초반처럼 훌륭한 위인은 못 돼도 창피하진 않은 꼼수는 부리지 않는 야당의 맏형이 되라고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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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기자 (wate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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