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핵무장 요구는 지렛대
정치권 '선명한 발언'은 역효과
자체 핵무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정치권의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듭 제기되고 있다.
민간에서의 핵무장 요구는 대외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가 될 수 있지만, 정치권의 '선명한 입장'은 역효과로 이어질 거란 지적이다.
평화적·군사적 이용으로 '양분'
韓, 평화적 이용으로 세계 6위
'마지막 문턱' 넘으려면
평화적 이용 입장 견지해야
원자력은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에 대한 구분이 뚜렷하다. 비확산 체제를 이끌어 온 미국은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을 통제해 왔다. 미국의 '암묵적 동의'를 바탕으로 핵무장에 성공한 국가들이 있긴 하지만, 북한 사례가 증명하듯 미국을 등진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은 국제사회 퇴출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역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미국 이해를 구해 관련 역량을 강화해 왔다. 근간이 되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한미 원자력 협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원자력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다만 '마지막 문턱'으로 평가되는 농축·재처리 기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관련 기술이 핵무장 '첫걸음'으로 간주되는 만큼, 미국이 통제 고삐를 바짝 죈 탓이다.
규범을 강조하며 '글로벌 중추국가'를 자처해 온 우리가 미국과 척지고 농축·재처리 기술을 품으려 드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결국 관련 기술을 확보하려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전제가 굳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핵무장의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선 핵무장을 하지 않을 거란, 어찌 보면 '모순적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일각에서 톤을 낮춘다며 핵잠재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결과'가 같도록…원자력 산업
필요에 따른 농축·재처리 추구로
국제사회 설득할 수 있어"
지난 2015년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당시 협상 부대표로 참여했던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주최한 정책 토크쇼에서 "자꾸 핵잠재력 (확보)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국제사회가) 다 의심을 갖게 된다"며 "'평화적 이용이 아니라 사실 핵무기를 만들려 그러는구나' 하면 될 것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과'는 같더라도 우리 원자력 산업 필요에 따라 추구하는 것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하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관점에서 산업적 필요성에 의해 농축·재처리 기술이 절실하다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의원과 함께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협상에 참여했던 류재수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진핵주기술개발부장은 "(우리나라가) 향후 30기 이상의 원전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며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안정적 연료 공급을 위해 농축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 우리가 미국 동의를 받을 수 있는 평화적 차원의 이용을 강조해야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 여건 조성에도 힘써야
고준위 방폐장 마련 등
정치적·국민적 공감대 필요
산업적 필요성과 별개로 국내 제반 여건을 갖추는 일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원전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적 일관성과 함께 농축·재처리 시설이 들어설 부지 및 관련 인력 등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의원은 "우리가 농축을 할 수 있으려면 필요성이 입증돼야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게(능력이) 있어야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다"면서도 "그게 아주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농축 시설이 공해산업"이라며 "분진이 엄청 많이 나오는 산업이다. 농축 시설에 방사능이 전혀 안 나옴에도 괜히 방사능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혐오시설 비슷하다"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선정 당시 겪은 홍역을 감안하면 고준위 방폐장 마련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는 관측이다.
유병석 외교부 국제기구·원자력국 심의관은 "농축·재처리가 가능하려면 국내적으로 농축·재처리 시설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기술 개발 등이 필요하다"며 "상당한 투자가 있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막대한 투자가 매몰 비용이 되지 않으려면 원자력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합의,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