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 폐지' 개헌에는 시큰둥
"새 화두 던져 대여 공세·정치적 압박
국민 여론 환기 의도로도 쓰일 수 있어"
"이슈에 이슈로 맞서는 이재명식 맞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을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지층이 이른바 광장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 확대를 원하고 있는 만큼, 국민들이 의원들을 직접 견제할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은 헌법개정사항이라는 게 중론인데, 앞서 이 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위한 개헌론에는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일축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이 대표가 개헌이 필요한 국민소환제 도입을 언급한 배경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10일 오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의 주권 의지가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도록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며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책임지고 행동한 그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공복의 사명을 새기겠다"며 "맨몸으로 장갑차를 가로막고 총과 폭탄을 든 계엄군과 맞서 싸우며 다음은 과연 더 나은 세상일 것이냐는 질문에 더 진지하게 응답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이 국민소환제를 꺼내든 배경 중 하나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당 안팎의 요구다. 박수현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탄핵 이후 대한민국을 대개혁하는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라며 "광장의 목소리가 굉장히 중요해진 경험을 우리는 지금 2016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직접민주주의적 경험들이 쌓이면서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교육감에 대한 주민 소환은 있는데, 왜 국회의원 등 선출직에 대한 국민소환, 주민소환은 없는가라는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민주당이 정작 선출직의 정점인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를 위한 개헌 요구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단 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를 위한 개헌은 계엄 사태 해결 방안 중 하나로도 제기된 바 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이 개헌 이야기를 들고 나온 배경'에 대해 "정략적"이라며 "(국민의힘이) 탄핵, 내란 국면을 회피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개헌 논의가 있었지만 국민의힘 측 반대로 통과되지 않았던 사례를 들어 "탄핵국면, 내란 국면에 개헌에 대한 합의를 집중적으로 빨리 만들어내기 어렵고, 개헌에 대한 의지가 있으면 지속 논의해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 아니면 안된단 (국민의힘) 얘기도 황당할 뿐더러 지금 시작한다 해도 결국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대표도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론에 대해 "내란 종식에 집중할 때"라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선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위한 개헌론에는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일축한 이 대표가 국민소환제를 고리로 새로운 여야 정쟁 요소를 유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 쪽에서는 개헌이 아닌 국회 입법을 통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이미 발의된 법안이 있다"며 "현행 주민소환제에 관한 법률 (적용대상에) 국회의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입법사항이 아닌 헌법사항이라 개헌을 통해서만 도입할 수 있다는 게 헌법학계의 중론이다. 현행 헌법 제42조에서 국회의원의 임기에 대해서는 예외나 단서를 허용하지 않고 4년으로 일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정부 때 대통령 발의 형식으로 발의됐던 개헌안에서도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관련 규정은 헌법에 직접 규정했다(개헌안 제45조 2항).
이에 따라 이 대표가 꺼내든 '국민소환제'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갈 '개헌 맞대응 카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외견상 대의적인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실상은 상대 진영의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 구조 분산을 위한 개헌'을 견제하기 위한 셈법이 주된 논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에서다.
설사 이 대표가 조기 대선 국면에서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소환제를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소환제의 기준'부터 정쟁 요소로 취급 받을 가능성이 큰 만큼, 여권의 반대에 무산될 수 있다는 장벽도 존재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국민소환제는 헌법학계나 정치학계·시민단체에서 20년째 주장하고 있지만 국회에 의해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며 "설사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국민소환제의 대상 기준이 있어야 한다. '국가적 내란 사태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을 확산했다' 등의 기준을 세우면, 여당 의원들의 반대로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어 "민주당은 일단 화두를 던짐으로 인해서 정치적 압박을 주는 것"이라며 "'국민소환제가 바람직하다'는 국민 여론을 환기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통화에서 "단순히 중도 민심을 공략하려는 의도보다, 정치 이슈에 정치 이슈로 맞서는 이재명식의 '개헌 맞불 카드'"라고 진단했다.
최 원장은 "'개헌을 하지 않고 국회 입법을 하자'라는 식의 의도인데, 쉽지 않은 거대 담론을 갖고 서로 밀고 당기기보다는, 제왕적 권력을 견제하는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개헌' 보다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여야 합의를 해서 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가 있지 않으냐는 것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