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종변론
"하루빨리 불합리한 혐의 벗고,
국민께 약속드린 마지막 소임 다할 것"
한덕수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행정각부를 통할하며 대통령을 잘 보좌해 어려운 대내외 상황을 극복해 나가고자 하였으나 대통령이 다른 선택을 하도록 설득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한덕수 총리는 19일 변론에서 국회가 제기한 다섯 가지 탄핵소추 사유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하며 "한평생 국민을 섬긴 사람으로서 내게 남은 꿈은 단 한 가지, 하루빨리 불합리한 혐의를 벗고 국민께 약속드린 마지막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세계 질서가 재편될 때 정부가 적시에 대응하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오래도록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내가 나의 자리로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 총리의 헌재 최종변론 전문
존경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여러분, 저는 오늘 대한민국 48대 국무총리이자 윤석열 정부의 스물아홉 번째 탄핵소추 대상으로 헌법재판소 재판정에 섰습니다.
먼저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그에 뒤이은 세 번째 현직 국가원수 탄핵심판으로 인하여 우리 국민 한 분 한 분이 느끼고 계신 고통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행정각부를 통할하며 대통령님을 잘 보좌하여 어려운 대내외 상황을 극복해 나가고자 하였으나 대통령님이 다른 선택을 하시도록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안정된 국정운영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마지막 소임이라 생각하였으나, 저 또한 탄핵소추 되어 부득이 직무가 정지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우리 국민들이 이런 어려운 상황을 겪고 계신 것 자체에 대하여 제 일신의 영욕을 떠나 진심으로 가슴 아프고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관 여러분, 국회는 다섯 가지 사유로 저를 탄핵소추하였습니다.
우선 국회는, 제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기 앞서 국무총리로 일할 때 국회가 통과시킨 여러 법안에 대하여 국무회의를 통해 재의요구안을 심의하고 의결한 것이 위헌이고 위법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해당 법안들은 모두 위헌 소지가 있었기에 헌법과 법률을 지켜야 할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헌정질서의 기본 정신에 도저히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이어, 국회가 제기한 내란 동조, 묵인, 방조 주장에 대하여, 저는 대통령님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사전에 전혀 알지 못하였고, 대통령이 다시 생각하시도록 최선을 다해 설득하였으며, 군 동원에도 일체 관여한 사실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 번째로, 제가 여당 대표와 함께 담화문을 발표한 것은 이번 사태의 여파로 대외신인도가 흔들리거나 경제가 위축되지 않도록 정부와 여야가 협력하여 안정된 국정운영에 힘쓰겠다는 뜻을 밝힌 것일 뿐 국회가 주장하시는 것처럼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서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또한 국회는 제가 권한대행이 되자마자 상설특검후보자 추천을 의뢰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이는 국회의 요구에 즉시 따르는 쪽이 오히려 우리 헌정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론 분열을 심화시킬 우려가 컸습니다.
특정 성향 야당만으로 특검을 구성할 수 있도록 야당 단독으로 하위 법령을 고친 것을 두고 위헌 논란이 거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통령 권한대행인 저로서는 과연 어떤 결정이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며, 국가 전체를 위하여 올바르고 이로운지, 여러 의견을 듣고 숙고할 시간이 절실하였습니다.
이미 공수처, 경찰, 검찰, 국방부 등 여러 국가기관이 대규모 계엄 관련 수사를 벌이고 있어 증거인멸이나 수사 지연 우려도 거의 없었습니다.
마지막 탄핵 사유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문제였습니다.
저는,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점, 여야의 실질적 합의 없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은 우리 헌정사에 전례가 없다는 점을 깊이 고민하였습니다.
나라가 어렵고 국론이 분분할수록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도 오직 원칙과 가치, 그리고 국민의 합의라는 점도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여야의 합의를 여러 번 간곡히 요청하였고, 여야가 합의하면 즉각 임명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만, 국회는 탄핵소추로 응답하셨습니다.
이는 제 일신의 영욕을 떠나, 우리 국민과 헌정질서 전체를 위하여 가슴 아픈 일이라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관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가 채 안되던 1970년 공직에 입문하였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처럼 우리보다 열 배, 스무 배 잘사는 나라를 까마득하게 바라보며 언젠가 우리 국민도 선진국 국민이 누리는 풍요와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하였습니다.
40년 이상 국정의 최일선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그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기여한 것이 저의 기쁨이었습니다.
저에게 많은 기회를 주신 국민들께 마지막으로 봉사하고 싶어 두 번째 국무총리 직을 받아들이고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경제 기적과 문화 도약을 이룬 우리나라가 극단의 정치에 함몰되어 길지 않은 현대 민주주의 역사에서 벌써 세 번째 국가원수 탄핵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무엇보다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한평생 국민을 섬긴 사람으로서 제게 남은 꿈은 단 한 가지, 하루빨리 불합리한 혐의를 벗고 국민께 약속드린 마지막 소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이제껏 경험한 수많은 난관보다 한층 거센 폭풍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와 정부가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 우리 곁에는 언제나 진영의 유불리를 넘어 나라 전체를 볼 줄 아는 정치인, 정치로 풀 일을 정치로 풀어주시는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가장 간절히 기다리는 것도 바로 그런 ‘큰 정치’의 복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계 질서가 재편될 때 정부가 적시에 대응하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오래도록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제가 저의 자리로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관 여러분, 극단의 정치는 국민 모두에게 막대한 비용을 지울 뿐 그 어떤 해답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이번 일을 통하여 뼈아프게 배우고 있습니다.
법치와 합의, 자제와 성찰, 합리와 효율이 정치와 정부, 나아가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작동원리가 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좌나 우로 가는 대신, 위로 갈 수 있습니다.
진영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 한 분 한 분을 위하여 최선의 해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극단의 시대를 넘어 합리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헌재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로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