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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당한 젤렌스키, 남의 일 아니다


입력 2025.03.04 16:00 수정 2025.03.04 16:00        데스크 (desk@dailian.co.kr)

“우크라이나 영구적 경제식민지 삼으려는 안”

트럼프. 꿩 먹고, 알 먹고….

관건은 젤렌스키와 국민이 하나가 되느냐 여부

‘미·북 평화 투자’…김정은과 자원 개발·사용권 거래?

지난달 28일 백악관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 AFP 연합뉴스

지난 2월 28일 전 세계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이 외국 국가 원수에게 막말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이 모습은 학교 교장과 교감이 반항하는 학생을 꾸중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정상회담,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1대1이 아니라 밴스까지 가세한 2대1, 피투성이 상처의 한 선수를 링에 올려놓고 힘세고 건강하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이 홈그라운드 이점을 등에 업고 가한 집단 린치에 가까웠다.


이번 만남은 원래 우크라이나 미래를 결정하는 거래였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본격 침공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장악했다. 현상 유지를 전제로 한 평화를 중재하는 대가로 미국이 우크라이나로부터 원자재를 획득하는 것이다.


회담이 깨지며, 예정된 원자재 협력 협정 서명식도 취소되었다.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음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영구적 경제식민지 삼으려는 안”

미국이 작성하고 지난달 7일 알려진 기밀문서 초안에 따르면,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가 3000억∼3500억 달러라 주장하며,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가 5000억 달러를 갚으라고 요구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가 채굴한 자원을 통해 얻는 수익의 50%, 아울러 향후 자원 수익화를 위해 우크라이나가 제3자에게 발급하는 모든 신규 개발·사용권에서 발생하는 재정적 가치의 50%를 가지는 것으로 작성되었다. 자원에는 광물, 석유·가스, 항구, 기타 합의한 인프라가 포함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상품과 자원에 대해 거의 완전한 통제권을 얻게 되는,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영구적인 경제식민지로 삼으려는 안”으로 볼 수 있다(데일리 텔레그래프, 2025.02.17). 우크라이나 부담은 GDP(국내총생산) 비율로 볼 때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지급한 배상금보다 높은 수준이다.


사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돈이 얼마인가는 평가기관에 따라 다르다. 독일 킬(Kiel) 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금액은 1197억 달러였다.


미 국방성이 제공한 최신 수치에 의하면 우크라이나는 총 1220억 달러의 군사, 재정 및 인도적 지원받았다. 다른 집계는 2021년 10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한 ‘대서양 결의 작전(Operation Atlantic Resolve)’에 ‘책정’된 금액은 1828억 달러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뿐만 아니라 유럽 주둔 미군의 훈련 비용, 미국 무기 재고 보충 등에 드는 금액도 포함됐다.

트럼프. 꿩 먹고, 알 먹고….

모두 트럼프가 주장하는 액수에는 한참 못 미친다.


우크라이나 지원 대부분이 미국 생산품, 그것도 부르는 것이 가격이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가진 군사 무기·장비로 미국 경제에, 미국의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에 엄청난 이윤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금액 이상을 지원 대가로, 미국의 거대자본이 원하는 우크라이나 자원을 요구하는 트럼프다. 꿩 먹고, 알 먹고….


그런데도 이번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줄 수 있는, 미국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안보 보장을 받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또한 트럼프 요구대로는 아니지만, 미국에 광물 자원 개발 지분을 제공하고자 했다.


다만 젤렌스키는 거래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트럼프가 두 가지 사실을 인정하기를 원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평화를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평화협정이 양측 모두에게 구속력을 가지게 하는 외부적인 안보 보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두 가지 ‘현실’ 중 어느 것도 완강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푸틴을 잘 알고 있으며, 그가 어떠한 합의에도 충실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체첸에 피의 흔적을 남겼고, 조지아를 침공했으며, 2014년 2월 크림반도 강제 합병에 이어 우크라이나를 두 번이나 침략한 푸틴과 같은 인물이 어떠한 합의도 무조건 준수하고 앞으로 우크라이나를 살려둘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는 듯했다.


젤렌스키는 현실을 전혀 다르게 인식하는 미국 대통령과 마주했고, 트럼프는 협상하는 대신 젤렌스키가 자신의 관점을 채택하도록 요구했다. 러시아와 평화 거래를 하려면 양보해야 한다, 당신에게는 카드가 없다, 당신이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떠날 것이라고 협박했다. 밴스도 끼어들어 젤렌스키가 무례하고 배은망덕하다고 비난했다.


이날이 푸틴에게는 아마도 인생 최고의 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크렘린궁에서 샴페인 코르크가 터졌을 것이다. 지켜보던 김정은도 트럼프에 ‘브로맨스’를 느끼며, “어 이거 다시 한번 만나 볼까”라 파안대소했을 것이다.


미국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젤렌스키는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 감사합니다”, “미국 감사합니다”, “우크라이나에는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라 호소했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관건은 젤렌스키와 국민이 하나가 되느냐 여부

역사는 젤렌스키를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할 것인가. 역사는 물론이고 현실도 결코 부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관건은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국민이 하나가 되느냐 여부다. 결사 항쟁 의지를 잃지 않는 일이다.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주된 이유가 우크라이나의 현실이 우크라이나만의 비극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벌 오피스’ 충돌은 유럽 수도들을 흔들었고, 젤렌스키에 대한 연대의 물결을 일으켰다.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를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의 지속을 약속했다.


젤렌스키를 지지하는 성명이 프랑스, ​​독일, 폴란드, 스페인, 덴마크, 네덜란드, 포르투갈, 체코, 노르웨이, 핀란드, 크로아티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슬로베니아, 벨기에,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아일랜드에서 잇따라 나왔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지도자들도 유럽의 목소리에 동참했다.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젤렌스키에게 “귀하의 존엄성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용기에 대한 경의입니다”, “강하고, 용감하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친애하는 대통령님”이라 전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3년 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정당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존엄성, 자신의 독립, 자신의 자녀, 그리고 유럽의 안보”를 위해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편에 미국이 나서기를 촉구했다.


독일의 차기 총리가 될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젤렌스키에게 독일은 “좋은 때나 힘들 때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할 것이다”, “우리는 이 끔찍한 전쟁에서 침략자와 피해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라고 전했다.


젤렌스키도 함께 한 유럽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정상 15명이 3월 2일 “우리의 미래를 지킨다(Securing Our Future)”란 표어 아래 런던에 회동했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는 지금이 유럽 안보가 한 세대에 한 번 맞닥뜨릴 결정적 위기 순간이고 “우크라이나에서 평화가 잘 도출돼야 유럽 대륙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다”라면서 우크라이나 안보를 지키는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관건은 유럽 국가들이 어느 정도로 하나가 될 수 있느냐 여부다. 우크라이나는 2008년 NATO 가입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등 푸틴과 이해관계가 얽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반대해 무산되었다. 그때 가입이 성사되었다면 이번 전쟁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미·북 평화 투자’…김정은과 자원 개발·사용권 거래?

김정은과 거래를 원하는 트럼프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는 하나 러시아와 중국이란 든든한 뒷배를 둔 김정은은 상처투성이 젤렌스키 처지와 다르다. 김정은은 당장 트럼프와 거래를 하지 않으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젤렌스키가 아니다.


미국이 양보하지 않으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김정은과의 거래를 위해 트럼프는 어떤 카드를 손에 쥐려 할까. 그 카드에 대한민국의 국익이 어느 정도 담길 수 있을까, 담기기나 할까.


거래 성사를 위해, 김정은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는 대신 트럼프가 ‘미·북 평화 투자’란 포장 아래 김정은과 북한 자원 개발·사용권을 거래할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미국 일방주의에 부합하는 거래 안을 ‘평화안’이라 우리에게 제시하며, “당신에게는 카드가 없다, 당신은 전쟁을 원하는가, 당신이 평화를 원한다면 이 안을 받고 김정은에게 양보해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떠나겠다”라는 상황이 현실이 아닌 환영(幻影)으로만 남을 것인가.


김여정이 3월 3일 오랜만에 나섰다,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행동을 동반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은 우리의 핵전쟁 억제력의 무한대한 강화의 명분을 충분히 제공해주고 있다”라며 김정은이 트럼프에 보내는 핵 거래 나팔 소리다.


미군 주둔, 한·미 군사훈련, 미군의 한반도 군사력 전개 등에 트럼프가 얼마나 큰 비용을 책정하고 우리에게 부담을 강요할 것인가. 안보 대가, 무역 수지 불균형을 이유로 어느 정도의 미국산 무기·장비 구매를, 투자·기술·시장을 요구할 것인가.


군사동맹을 기반으로 경제·기술을 넘어 가치동맹으로까지 진전되던 한·미 관계였다. 양국 간에 넓고 두텁게 존재하는 유대감과 공감대로 트럼프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넘을 수 있다.


관건은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여부다.

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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