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잔혹함을 확인하는데 중국의 혹형사(酷刑史)만한 것도 없다. 머리와 허리를 베는 참(斬), 수레에 매달아 몸을 갈갈이 찢어버리는 거열(車裂), 태우고 삶는 분(焚)과 팽(烹), 거리에 목을 매다는 효수(梟首), 목을 조르는 교액(絞縊),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투애(投崖) 등 차마 입에 담기조차 몸서리 쳐지는 형벌들이 겉으로는 '콴시(關係·관계)' 운운하며 웃음 짓는 중국인들의 잔인함을 엿보게 한다.
이 가운데서도 으뜸은 한고조 유방의 정실이었던 여 태후의 ‘사람 돼지(人彘)’ 행형(行刑)일 것이다. 작가 이문열은 ‘초한지’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여 태후는 영항(永巷, 죄지은 궁녀를 가두어 두던 곳)에 갇혀 있던 척 부인을 끌어내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고막을 연기로 그을어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던져 넣었다. 야사로 떠도는 말에는 그 전에 고제가 사랑했다 하여 음부를 짓이겨 버렸다는 말도 있고, 남자 죄수들이 우글거리는 감방에 벌거벗은 채로 던져 넣어 척 부인을 마음껏 능욕하게 했다는 말도 있다. 또 어떤 기록에는 죽은 조왕의 시체를 끌어다 보여 주며 척 부인의 발악을 이끌어 내어 욕하는 그 혀를 자르고, 노려보는 그 눈을 뽑고 종당에는 귀머거리를 만들고 사지까지 잘라 버렸다고 한다. 그녀가 던져진 곳도 돼지우리가 아니라 변소였다는 말도 있다.’
이미 척 부인의 아들 조왕 유여의를 독살한 여 태후의 원한과 분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어이 자신의 아들 효혜제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손발까지 없는 사지로 돼지우리를 기어 다니는 척 부인에게 데려가 손가락질 하며 낄낄거리기에 이른다. 어질고 여린 효혜제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고 이때의 충격으로 밤낮으로 주색에 빠져 끝내 요절하고 만다. 금수(禽獸)의 악행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여 태후의 끔직한 복수심에는 살아생전 유방의 사랑을 독차지해 자신을 청상(靑孀)으로 만들었던 척 부인에 대한 졸렬한 질투심과 더불어 하나 뿐인 아들, 효혜제에 대한 병든 모성애도 자리 잡고 있었다. 내 아들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위(寶位)에 올리겠다는 그 어두운 열정이 중국 전체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비정한 혹형의 실례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만 해도 2000년도 훨씬 전의 고사(故事)여서 기록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얼마나 왜곡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가. "정인이 오른쪽 팔의 피부는 깨끗하지만 팔뼈 아래쪽 제일 말단 부위가 완전히 으스러져 있었다. 이것은 때렸다기보다는 팔을 비틀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으드득 소리가 났을 것이다. 특히 아이의 팔을 들고 각목으로 추정되는 물체로 3차례 가격한 흔적이 있는데, 이와 비슷하게 직접 야구방망이에 스펀지를 감고 맞는 실험을 해본 결과 어른도 40초 이상 쓰러져 말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정인이는 양쪽 팔을 다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정인이의 8, 9, 10번 갈비뼈는 이미 부러져 있었다. 피고인은 정인이가 울지도 않는 아이라고 했지만 갈비뼈가 아파 울지 못했을 것이다.”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 사망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인 양부모의 1심 결심공판에서 나온 이정빈 가천대 의대 법의학 석좌교수의 증언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가. 이모 부부는 조카에게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개의 대변을 먹으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이모는 "입에 쏙"이라고 말한 뒤 조카가 대변을 마지못해 입에 넣자 "장난해? 삼켜"라고 소리쳤다. 조카는 한겨울에 발가벗은 채 욕실 바닥에서 빨래를 하거나 얇은 상의만 입고 매일 같이 벌을 받았다. 사망 직전에도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드는 벌을 받으려다 늑골이 부러져 미처 왼팔을 들지 못했다. 3시간을 폭행한 이모 부부는 급기야 욕실로 조카를 끌고 가서 발을 빨랫줄로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머리를 물이 담긴 욕조에 여러 차례 강제로 넣었다가 빼는 물고문을 자행해 기어이 조카를 숨지게 했다.’ 이모 부부가 10살 여자 조카를 폭행과 물고문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과 관련해 이들 부부가 직접 찍은 학대 동영상에 담겨 있는 장면들이다. 법정에서 검찰에 의해 고스란히 공개됐다.
과거와 현재, 수천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사람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의 잔혹함이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야만적인 패륜범죄에 질식감과 분노는 더욱 가중된다. 앞의 이야기가 그 옛날 신화와 전설의 혐의를 지닌 채 과장되게 소환된 것이라고 우겨볼 여지라도 있다면, 뒤의 이야기들은 불과 몇 달 전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한 후 아직도 단죄가 끝나지 않은 참담한 실화들이다. 혹자는 친부모가 아니니깐 저런 살인마들이 나왔다고 애써 위로하지만 눈만 뜨면, 자기 뱃속으로 낳은 피붙이들도 때리고 밟고 던지고 심지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굶겨 숨지게 하는 기사들이 봇물을 이루는 것을 보면, 여 태후조차 가지고 있던 모성애마저 요즘 부모들에겐 없는 모양이다. 실제로 아동권리보장원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친부모 가정의 아동학대는 57.7%(1만7천324건)로, 우리 아이들에 대한 대부분의 학대는 가장 의지했던 친부모에 의해 개별가정에서 은밀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정인이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미의 3세 여아 보람이는 친엄마(나중에 친언니로 밝혀짐)가 이사 가버린 빌라에 홀로 남겨졌다 굶어 숨진 채 발견됐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아사(餓死)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는 바람에 숨이 끊긴 것이다. 언어도단의 만행에 관용이 깃들 구석은 없어 보인다.
이제는 공분 가지고는 아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부모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엄마 아빠와 살고 싶다는 게 아이들이고 보면, 당장 친권을 빼앗아 격리시키고 입법 만능의 처벌만 강화한다고 없어질 학대가 아니다. 허구한 날 양형 형평성이나 따지는 판사들과 일이 터지고 나면 기존 정책들의 이름만 바꿔 재탕하는 정부, 그리고 극한의 참혹함이 있고 나서야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언론까지 우리 모두는 그저 공범일 뿐이다. 공권력은 이미 오래 전에 현관 앞에서 멈췄다. 즐거운 우리 집은 아이들의 매 맞는 소리를 숨겨둔 사각지대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아기를 안 낳는다는 대한민국이 그나마 낳은 아이들마저 도륙하고 있는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이 특별담화라도 발표해야 한다. 기자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나 사회 각계의 어른들이 아동학대 문제에 천착해 공감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막말로 우리 아이들이 자기 부모 손에 맞아 죽어가고 있는데, 북핵이 그렇게 중요하고 부동산 문제가 대수인가. 대통령이 나서서라도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공동체의 책임을 구현해야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아이들의 희생이 더 이상은 없도록 공동체의 역량을 모아야한다.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못했던 아이, 정인이가 잠든 묘지는 무료 장지이다. 소아암·백혈병으로 너무나도 일찍 부모 곁을 떠난 어린이들의 넋을 기리며 돈을 받지 않고 운영되는 곳이다. 보람이 언니처럼 정인이의 양부모도 정인이 앞으로 지급되는 각종 수당을 악착같이 챙겨왔지만 정작 이들이 정인이의 마지막 길에 들인 비용은 다이소 액자 구매에 쓴 3000원이 전부였다. 지금이야 전국 각지에서 정인이를 추모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처음 수목장이라고 불리던 정인이의 묘지에는 앙상한 나뭇가지 몇 개와 물에 젖은 액자에서 웃음 짓는 정인이 사진이 전부였다. 그 사진 위로 과천에서 온 심현옥 할머니가 절창(絕唱)의 추모시를 남겼다. ‘(중략) 할머니 품에 언 몸 녹으면 따뜻한 죽 한 그릇 먹고 가거라. 걸어서 저 별까지 가려면 밤새 지은 할미 천사 옷 입고 가야지. 천사들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제 정인이 왔어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거라. 부서진 몸 몰라볼 수 있으니. 아가야! 너를 보낸 이 핼미는 눈물에 밥을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