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등으로 국민연금 기업간섭 우려
기금운용 간섭 금지시킨 채 감독 기능만 수행하는 위원회 제안
국민연금의 기업지배 영향력이 갈수록 심해져 구조개선을 통해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앞세워 기업들의 경영에 간섭하겠다는 것은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광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6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국민연금 독립성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기조 발제를 통해 “일부 기업의 위법 행위는 관련법을 통해 처벌하면 된다”며 “정부가 나서서 국민연금을 이용해 기업들을 제재하겠다는 발상은 기금설립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민연금위원회(가칭)’ 복지부 설치를 제안했다. 다만 기금운용 간섭은 금지시킨 채 감독 기능만 수행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연금위원회 산하에 기금운용위원회를 두되 위원들을 세계 최고의 기금운용 전문가들로 구성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독립성을 확보하자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최성현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본부장은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국내 주식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기금운영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정치적 이유로 기업 경영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과 지난해 말 마련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은 이런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2월 27일 공시한 국민연금 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을 통해 수탁자 책임 활동으로 기금이 보유한 상장주식에 대해 주주 제안뿐 아니라 소송 제기 등의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에 손해를 끼친 기업과 임원을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이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수탁자 책임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안을 의결했다. ‘5%룰’로 알려진 이 개정안은 기관투자가의 상장사 5% 이상 지분 보유에 따른 공시 의무를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의 경영개입 권한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내달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연임의 ‘키맨’ 역할을 국민연금이 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KCGI, 반도건설의 ‘반 조원태 3자 연합’이 확보한 지분은 32.06%(KCGI 17.29%, 반도건설 8.20%, 조현아 6.49%)다. 조 회장측은 33.45%(델타항공 10%, 조원태 6.52%, 조현민 6.47%, 이명희 5.31%, 재단 등 특수관계인 4.15%, 카카오 1%)를 확보한 상태다.
양측 지분율은 1.47% 격차에 불과해 4.11%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결정이 중요하게 되면서 기업 경영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커졌다. 재계 및 전문가들이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따른 기업 경영 간섭을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최 본부장은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이 거의 없는 현 상황에서는 국민연금이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 기업과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 산하 위원회 중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스튜어드십 코드)의 집행역할을 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투자정책전문위원회’는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원회의 설치근거를 상위법이 아닌 시행령에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연금 의사결정의 한 축인 지역가입자단체에 농어업인·자영업자·소비자·시민단체들까지 넣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위원회의 구성이 다양하다고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연금이 사법적 심판대에 오르는 현상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건복지부의 역할은 감독 기능에 국한하고 시민단체들도 위원회를 통한 과도한 기업경영 개입 충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는 한국경제연구원·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 등 경제단체들의 공동으로 개최됐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개회사에서 “국민연금 설립 목적이 국민들의 미래소득 보장에 있는 만큼 정부가 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