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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메모리즈⑰] 배우 윤정희, 그날의 인터뷰


입력 2021.02.20 00:00 수정 2021.02.19 15:35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시'의 손미자, 그를 연기한 배우 윤정희 ⓒ㈜NEW 제공

2010년 4월로 기억한다,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영화 ‘시’와 관련해 배우 윤정희 님을 뵈었다. 늘 진행되는 인터뷰였지만 남다른 긴장을 느꼈다. 필자 세대에선 만나 뵐 날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1960년대 트로이카(배우 남정임, 문희와 함께) 한 사람과의 대화였다. 다른 배우들 인터뷰 때도 전작들을 살펴보고 미처 못 본 영화가 있으면 최대한 찾아 관람하며 준비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기회라 생각하니 사전준비가 길었다. 기자라기보다는 어린 시절 추억 속의 배우, 스크린 속의 그분을 현실에서 만나는 팬의 마음이었다는 게 맞을 듯하다.


인터뷰는 기대 이상이었다. 배우로서 의견은 선명하고 아우라는 대단했고, 여자로서 아름다웠고, 인간으로서 정갈했다.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남편의 말을 빌려 본인이 표현하듯, 늘 하늘로 날아오르는 고무풍선 같은 사람, 땅으로 끄집어내려도 또 하늘로 올라가는 천생 배우 그 자체였다.


영화 ‘시’에서 자신의 본명과 같은 손미자를 연기했는데, 시를 배우고 ‘시심’(詩心)을 갖게 된 그는 동물의 마음으로 큰 잘못을 한 손자를 할머니로서 감싸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고발한다, 그것이 손자를 진심으로 위하는 길이자 유명을 달리 한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해서다. 배우 윤정희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정확히 담지했고, 인간 윤정희는 그에 동의했다. 그러함에도 발은 땅에 있되 마음은 하늘을 향해 있는 타고난 배우라고 한 것은 질문에 답하는 발화가 시를 읊는 것 같기도 하고 더빙 시대의 영화 대사를 말하는 것처럼 운율이 느껴지고, 눈앞에 앉아 계심에도 흩날리는 하얀 시스루 커튼 뒤에서 속삭이는 듯 환상적으로 느껴져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발음이 약간 어눌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오랜 프랑스 생활로 불어가 익숙해진 영향이거니 생각했다. 질문과 답 사이 조금 길어지는 공백들도 좋았다. 시의 행간처럼 다가왔다.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생각의 시간이 주어졌다. 느릿한 템포의 리듬감 있는 말투로 40여 년 전 한국영화계 얘기와 젊은 배우 윤정희의 고민을 들려주기도 하고, 칸에서 여우주연상보다는 황금종료상을 받아 이창동 감독부터 배우들과 제작진 전체가 함께 기뻤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하고, 전도연 심은하 문소리 배두나를 언급하며 후배들을 응원하는 모습까지 전부 아름다웠다.


“나더러 (영화 ‘만무방’ 이후) 16년 만에 돌아왔고 하는데, 난 영화를 떠난 적이 없어요. 난 늘 영화 속에 살아요. 이번에 ‘시’처럼, 감동적이고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영화를 기다린 거예요. 마음에 와닿는 시나리오를 만나면 언제든 또 할 거예요. 배우가 왜 꼭 젊어야 해요, ‘내 주름 그대로’가 영화에 필요하고 쓰일 수 있는 작품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늘 갈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다시 꼭 보고 싶었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색깔과 향을 지녀가는 윤정희라는 배우의 신작을. 그런데, 2019년 가을, 윤정희 님의 가족은 그가 알츠하이머를 10년째 앓고 있으며 요리하는 법도 잊고 더는 남편의 연주 여행을 함께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재 상태가 심각하다고 알렸다. 파리 외곽 호숫가 마을에, 바이올리니스트인 딸의 옆집에 거처를 마련해 24시간 간호사가 교대로 돌보고 전문의가 왕진으로 살피고 있고 식사만큼은 딸이 직접 챙기고 있다고 알렸다.


가족도 아니건만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배우이고, 제63회 칸국제영화제 당시 여기저기서 칭송이 나오고 결국은 그해 여우주연상을 받은 줄리엣 비노쉬마저 윤정희를 만나고 싶어 했고 실제로 만나 자자한 칭송을 전한 배우이기도 했고, 인터내셔널 기자회견에서 프랑스 현지어로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들에게 답했던 유일한 한국 배우이기도 했던 영향도 있겠지만. 언제나 ‘영화배우’일 것 같은 비현실적 이미지에 ‘알츠하이머’라는 현실적 병명이 붙은 이질감이 쉽게 수긍되지 않았다. 그리고 몇몇 기억이 떠올랐다.


우선 2010년 기자들과의 인터뷰 당시, “요즘 뭘 자꾸 잊어버린다”며 자신의 기억력에 대해 아쉬워하는 얘기를 했을 때, “선생님, 저도 그래요. 어제와 그제의 일이 구분이 잘 안 되고 방금 이를 닦고서도 닦았나 한다니까요”라고 말하며 나이 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건망증쯤으로 말했던 게 ‘잘못’이었나 자책했다. 또, 가족의 말을 빌려 2019년으로부터 10년 전쯤이라면 인터뷰 당시는 물론이고 영화 촬영 때도 이미 발병 후라는 것인데 제작진에게 알리고 촬영했을까, 공식적으로 공유하지는 않은 채 촬영이 진행됐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도중에 무언가를 느꼈다면 이창동 감독과 제작자 이준동 대표 등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오지랖이 뻗쳤다.


그리고, 배우 윤정희의 연기에 대해 다시금 감탄이 일었다. 정말 2009년부터 병세가 있었다면,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가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를 연기한 상황이 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극복’의 의지가 담긴 놀라운 연기가 아닌가. 같은 처지의 캐릭터를 연기해서 쉬운 게 아니라 정반대다, 건강한 상태에서 펼친 결과라 해도 대단한 연기인데 하물며 정신과 직결되는 신체적 어려움을 지닌 채 표출한 연기라니, ‘이건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기억은 2016년,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JTBC ‘뉴스룸’이 마련한 인터뷰였다. 확인해 보니 9월이고 가족이 윤정희 님의 병세를 알린 때로부터 정확히 3년 전, 발병 8년 차의 시기였다. 필자는 둔감하게도 그때 역시 병세를 눈치채지 못했다. 배우 윤정희의 색깔을 묻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제가 손 선생님께 여쭈고 싶은데 제 색깔이 뭐예요? 어떻게 느끼세요?”라는 반문으로 응하는 모습, “베이지”라는 대답에 호응하면서 “제 마음은 항상 희망적이고 낭만적이기 때문에 제 얼굴도 뭐, 로맨틱한 색깔 같아요”라고 마무리하는 모습에서 굉장한 순발력과 재치를 느꼈기 때문이다.


“청춘극장에서 스물네 살이셨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앵커의 질문에 일순간 끼어들며 “죄송하지만, 나이는 기억을 못 하는데요”라고 말해 웃음을 유발한 것에서도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 나이, 그것도 배우 나이를 얘기하는 건 피하고 싶다’는 뜻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손 앵커도 “제가 쓸데없는 걸 기억한 것 같습니다”라고 재치와 예의를 담아 수긍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오래된 과거만 기억하는 것도 아니었다. 앵커가 “LA 전미 비평가협회에서, 이게 오래된 얘기가 아니고요”라고 말하며 새로운 질문을 시작할 때 배우 윤정희는 “네, ‘시’”라고 바로 추임새를 넣었다. 이런 재치와 유머, 또렷한 기억력을 보면서 ‘알츠하이머’라는 단어를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윤정희 님의 안타까운 근황이 더욱 충격적이었다는 얘기다.


현재까지 전해진 가족의 설명과 언론에 노출됐던 모습을 견주어 생각해 보면, 알츠하이머 중기까지는 도드라지지 않게 일상대화가 가능했고 8년 차까지는 서서히 진행되다가 그 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말기로 심화한 상황이다. 그리고 6남매의 장녀인 윤정희 님의 동생들과 남편을 위시한 직계 가족의 대결 양상이 드러난 현재는 그때로부터 또 1년 반의 시간이 흘렀으니 현재 상태를 가늠하기란 어렵다.


다만, 다시 한번 오지랖을 부려 바라옵기는 요양원인가 집인가의 문제보다 ‘24시간’ 누군가 곁에 있기를,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데이케어센터 등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놀이치료 등 활동을 하는 게 표정도 밝아지고 건강해진다는 많은 이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희망한다. 치매 환자 가족의 고통이 상상 이상으로 극심한데 과연 누가 뭐랄 수 있겠는가마는 윤정희라는 존재는 특별하게도 인간 윤정희인 동시에 배우 윤정희이기에 ‘감히’ 바람을 실어본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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